사회주의자 19890825 창간호
창간에 부쳐
사설 : '새청지'와 '범민주' 후보의 환상
사설: 우리는 분신에 반대한다
혁명적 노동자는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선전전의 기치를 높이 들자
부천지역 노동조합협의회의 깃발은 오르고
승리를 향해 진군하는 전교조 동지들
민중운동의 당면과제와 전술에 관한 테제
편집후기
◆창간에 부쳐
새로운 신문 『사회주의자』를 창간함에 있어 우리가 어떠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어떠한 일을 하기 위해 이 신문을 창간하는가를, 즉 이 신문의 발간 목적을 간단하게 밝히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각성을 돕고, 계급의식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이 신문을 창간하였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7, 8월 투쟁으로 '새로운 출발'을 경험하였다. 그로부터 2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활력은 조금도 감퇴되지 않고 있으며 노동자계급의 의식상의 발전 역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광범하고 치열한 계급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직관은 나날이 풍부해지고 깊어지고 있다. 우리는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상을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해석함으로써, 계급투쟁 속에서 나날이 풍부해지고 깊어지는 노동자계급의 직관에 분명한 이론적 표현을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의 근본적 모순에 대해, 그것의 해결이라는 노동운동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노동자들과 진지하게 토론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역사적 사명에 대해 거듭 이야기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모든 피착취 근로대중의 대표자이며, 그 대표자로서의 책무를 조직적, 지속적 투쟁을 통해 실현해야 한다는 사실도 거듭 말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곧 노동자계급의 유일하게 과학적이고 올바른 사상, 즉 과학적 사회주의를 전파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계급이 과학적 사회주의에서만이 모든 의문의 일관되고 올바른 해답을 얻을 수 있으며, 과학적 사회주의로 무장할 때만이 온갖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비과학적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며 나아가 소외된 임금노예의 상태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자신의 위대한 역사적 사명을 다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학습으로 모든 노동자를 이끌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과학적 사회주의의 학습 앞에 주저하는 노동자를 격려할 것이며, 과학적 사회주의의 학습에 어려움을 느끼는 노동자를 도울 것이다. 최근 1~2년간에 과학적 사회주의의 고전들이 많이 번역 출판된 것은 우리가 과학적 사회주의를 선전하는 데 좋은 조건이 되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모든 형태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정체를 폭로함으로써 각성하는 노동자계급의 그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자발적 투쟁을 도울 것이며, 그 투쟁에 앞장설 것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의 투쟁은 아직 매우 힘든 싸움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전후 수십 년 동안 도전받지 않는 지배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모든 현대적 장비를 동원하여 대규모적으로 선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온갖 형태로 노동자계급의 의식에 침투해 들어와 있으며, 또한 침투해 들어올 것이다. 또한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의 투쟁 역시 그에 못지않게 힘든 과업이 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반제, 반독점, 반파쇼 투쟁을 소부르주아 계층이 주도해 온 탓으로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반정부적 성격을 지닌 모든 진보세력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며, 심지어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을 고무하고 이끌어 온 것도 주로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자들이었던 까닭에 그것이 선진적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권위와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 온갖 다양한 형태로 분화·발전되어 있으며 그중의 상당 부분은 이미 세계사적 경험에 의해 진리로 확증된 과학적 사회주의로 스스로를 위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싸움은 특별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부터,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노동자계급 대중을 구출하는 것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문제이며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우리는 모든 차원에서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노동자계급의 적들에 대한 투쟁에 참여할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현재의 이익과 미래의 이익을 모두 옹호하고 대변할 것이다. 우리는 노동운동의 전술을 발전시키는 데에, 세계노동운동사의 경험에 의해 책임된 원칙들을 우리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시키는 데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반제, 반독점, 반파쇼 투쟁의 전술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는 당면 반제, 반독점, 반파쇼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의 동맹군들이 모든 계급·계층의 진지한 투사들에게 노동자계급의 입장과 관점을 전달하고, 그들로 하여금 가장 철저한 투사인 노동자계급을 지원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우리는 각 지역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에 관한 각종의 주요한 소식을 전하고, 그 교훈을 도출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각 지역에 형성되어 있는 또는 형성되어 갈 사회주의자와 혁명적 노동자로 이루어진 그룹들을 연결시키고, 그들 상호간의 사상적 통일성을 제고하고 선전, 선동과 조직활동의 통일성을 높이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의 건설로 이어질 노동자계급의 전위부대의 전국적인 단일대오 형성에 기여하고자 한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지금까지의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운동에 사상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연줄이 닿아 있는 모든 그룹들에 대해서는 신중한 정책을 견지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철저한 사상투쟁을 통해 활동가들 사이에서 사상적 동일을 이루어내는 것"을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있어 가장 주요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활동가는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자들이며,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상투쟁이란 그들끼리의 좌익공론의 교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공론을 아무리 뒤섞어 본들 소용이 없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운동과의 철저한 단절 없이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운동을 출발시키고 발전의 가속도를 붙여 나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은 그들, 과학적 사회주의로 자신을 위장하고 있으나 그 본질에 있어서는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혁명적 민주주의, 부정부주의의 혼합물인 각종의 사상을 가진 다양한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자 그룹들의 사상·이론과 실천을 보다 엄격한 태도로 비판해야 할 때이며, 그들에게 관대한 정책을 취할 시기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이상에서 밝힌 과업들을 완수함에 앞서 우리는 우선 이 신문이 모든 노동운동가의 실천 내용을 충부히 하고, 특히 거기서 결정적으로 빈약한 부분인 사회주의적 실천을 강화시키고 그를 위해 불가피한 비밀활동을 고무하는 데 기여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노동자계급의 정치활동의 내용을 풍부히 하고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운동을 본격 궤도에 올리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이야기한 외에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을 것이다. 그것은 실로 우리들만의 힘으로 감당하기 벅찬 과업이다. 우리는 그러한 역사적 과업을 사회주의운동과 노동운동의 모든 진지한 일꾼들과 더불어 수행해 나가려 한다.
마지막으로 언어사용과 표현에 대해 우리의 의지를 밝혀두고자 한다. 우리는 남한 표준어를 기본으로 하여 노동자적, 민중적 표현을 가미하여 새로운 혁명적 언어를 창조해 나가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자들의 허세와 과장된 표현을 본받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모든 비과학적 사고, 주관적 판단의 출발이다. 우리는 모든 기사를 대중적 언어로 간결하게 쓰기 위해 노력할 것이나 동시에 단순화와 통속화는 배격할 것이다. 세계 자체의 복잡성에 대해 눈감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1989. 8. 25. 『사회주의자』 편집위원회
◆사설
'새정치'와 '범민주' 후보의 환상
영등포을구의 국회의원 재선거가 민정당의 나웅배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의외의 결과'에 부르주아 언론들이 호들감을 떨고 있다. 부르주아 언론의 한쪽 지면은 부정·타락 선거를 규탄하며 "재재선거를 해야 한다"는 목청이 높다. 또 다른 쪽 지면은 선거 절차를 아주 공정하게 진행된 선거인 것처럼 규정하며, 민정당의 압승은 '안정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확인한 것이라고 호들감을 떨고 있다.
선거가 끝남에 따라 각당각파는 정국운영의 기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고 부산하다.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이번 선거에 자신의 후보를 내고 직접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범민주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선거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노동운동을 비롯한 혁명적 민중운동은 자신의 대안 없이 현실정치에서 밀려난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와 이에 기반한 범민주 세력의 결속이 아니고서는 노태우에게 철퇴를 내릴 수 없다는 것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선거에 대한 간략한 평가
영등포을구 재선거는 부르주아지 각 정당이나 프롤레타리아트 및 근로민중 모두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민정당은 자신들이 추동해 온 소위 '공안정국'을 지속하기 위해서 '좌익적결'의 정책에 대한 국민의 가시적인 지지를 획득하고자 했다. 민정당은 돈과 폭력과 권력을 동원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독점부르주아지의 정치권력을 유지 강화하려고 '눈이 뒤집혔다'. 한편으로는 유권자들에게 온갖 향응을 베풀며 매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경제를 동원하여 반대자들에게 위력시위를 하고 폭력으로 선거운동을 방해하였다. 정찰은 안정을 빌미로 하여 주요 지역에 '준 계엄' 상황을 조성하고 반대자들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위력시위를 하였다. 체제 위기를 내세운 안정의 논리가 상층 부르주아지에게 먹혀 들어갔다. 저들은 평민당을 1만 표차 이상으로 따돌리고 민주당, 공화당 표를 1만 표 가까이씩 잠식함으로써 압승을 거두었다. 저들은 확고하게 부르주아 야당들을 누르고 이를 계기로 정국의 주도권을 굳히는 데 성공했다.
그에 비해서 야당은 참패했다. 압도적으로 민정당에 졌다. 이러한 결과는 부르주아 야당들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형편없이 떨어졌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민중의 압도적 다수의 요구인 민주주의 개혁과 5공 비리·광주학살 문제에 대한 기회주의적 태도가 결정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들로부터 이반된 부동표는 민정당으로 많이 갔다. 그 이유는 주로 공화당과 민주당의 부르주아지, 상층 비부르주아지가 '좌익척결' 공세 속에서 적색 기피증을 보이며 안정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 일부는 물론 '범민주' 진영으로 왔다고 보여진다. 평민당이 자기의 표를 지키고 미세한 상승세를 보인 것은 물론 지역적 응집력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위에서 평민당이 민정당과 직접 격돌하고 있는 정황이기 때문에 이탈표가 없었다고 보여진다. 물론 제3야당 보너스도 있다. 민정당과 평민당의 직접적인 격돌은 상대적으로 평민당의 지지표를 굳혀 주었으며, 또한 민주당, 공화당의 유동표가 민정당으로 쏠리게 만든 요인이다. 그러므로 타 야당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평민당은 자신을 제법 방어해 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새정치'의 서명파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과 진보정치연합 등 민중운동 일부의 무대를 타고 등장하면서, '범민주' 후보는 초반에 이번 선거 초대의 변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소문파는 달리 부르주아 야당과 별로 구별이 되지 않음으로써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새정치'의 서명파는 민중운동을 끌어들여 자신의 헤게모니 아래 두는 데 심공하였으나 이들의 범민주 후보는 민중들로부터도, 비부르주아지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두 마리의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 것이다.
이와 함께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의 정치적 무능력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민중운동은 이번 선거운동을 군사파쇼의 공세에 대한 방어를 조직하는 계기로 활용하지 못함으로써, 뼈아픈 실패를 맛보았다. 민중운동이 독자적인 후보를 내세우지 못하고, 범민주 후보에 주도권을 빼앗기면서부터 이미 민중운동의 실패는 시작되었다. '범민주' 후보로서는 결코 민중운동을 방어하는 데 작은 계기조차도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 선거를 평가해 볼 때, 최대의 특징은 중간층의 다수가 소위 '안정'을 선택했다는 데 있다. 이 점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표가 대거 민정당으로 쏠렸다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군사파쇼의 '좌익적결' 공세가 일정하게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중운동이 군사파쇼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민중운동이 이념전에 적극 대처하여 주동성을 쟁취하지 못하면 (다른 문제가 없을 경우) 이러한 정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민중운동은 각고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범민주' 후보의 환상
오늘의 우리 운동의 내외적 조건에서 볼 때, 선거투쟁에서는 혁명적 민중운동이 독자 후보를 내세우고 선전·조직활동을 힘차게 벌여야 한다는 원칙은 대통령 선거 시기를 지나면서 거의 확립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원칙에 대해서 문제삼는 동지들은 별로 없다. 그런데, 독자 후보 전술을 말하면서도 실상은 그 내용을 왜곡하여 혁명적 민중운동의 독자성을 내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민중운동이 서명파 의원들과 연합하여 '범민주' 후보를 내세우는 과정이 그 전형적인 경우였다.
실제로 '범민주' 후보의 선거운동 진영은 서명파 의원들 중심의 그룹과 민중운동에서 파견된 그룹의 두 개의 캠프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러나 민중운동에서 파견된 선거운동원들은 전혀 독자적인 선전·조직활동을 하지 못하고, 지원부대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고 한다. 선거운동은 완전히 서명파 의원들 중심으로 꾸려졌다. 따라서 '범민주' 진영이 내세우는 선거 강령은 부르주아 야당들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들 스스로는 '3김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스스로를 생각하고 대중 앞에 나섰지만, 실제로 그들을 현 정치체제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것은 선거운동의 전 과정과 그 결과를 놓고 볼 때,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단지 '범민주' 후보의 서명파 진영만이, 그들을 지지하는 비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만이 환상에 빠져 있었을 뿐이다. '범민주' 선거운동 캠프에서 운동원으로 참여한 한 노동자 동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 우리가 고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가? 그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는 우리의 후보가 아닌가?" 바로 이 동지의 말이 '범민주' 후보의 실제를 적나라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그는 노동자의 후보도 농민의 후보도 아니었다. 그는 비부르주아지의 후보였다! 이 동지의 분노의 소리야말로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범민주 후보에게 이제는 더 이상 당신들의 '보조원' 노릇을 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다.
범민주 후보 측은 선거운동을 평가하면서 "나름대로 대단한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앞으로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들이 생각하는 환상이 실현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환상의 나래에서 차가운 현실로 돌아오는 길목이 참으로 아플 것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새정치'와 진보정당
범민주진영의 선거운동을 주도하는 흐름은 서명파 의원들과 변호사 등 새정당 기치 아래 모여 있는 각양각색의 흐름들이다. 그들은 진보정당이라는 용어조차 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새정치, 새정당을 말한다. 개량주의적 쁘띠부르주아지를 포섭하기 위해서! 그러나 노동운동 내에도 그런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합법정치 전술'(?)이 그들을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깔아놓고 그들에게 몸을 내주는 꼴이 된다는 것을 이번 선거투쟁에서처럼 명료하게 보여준 적이 없다. 이 자리에서 민정당 대표 박준규가 '특별한' 관심을 표시했다는 것을 상기하시기 바란다. 그는 "새 정치세력의 등장을 위해 좋은 격려가 됐다"고 말했다. 독점부르주아지의 입장에서는 진보정당이 파격하지 않게 개량주의를 내걸고, 체제 내적으로 활동하는 '새 정치세력'으로서 등장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야당을 견제하며 분열과 공세를 수월하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혁명세력을 체제 내화하는 일도 용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국민적 지지도 별로 없는, 그래서 별 위험부담 없이 '가범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민정당 대표가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실망하지 말고 계속 힘쓰라고. 단, 지금처럼 '새정치'를 주장하며 온건하게만 나와달라고! '새정치'는 오히려 부담 없이 부르주아 국회에 새바람을 넣으면서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이므로.
우리는 군사파쇼의 '좌익척결' 공세와 탄압에 굴복할 수 없다. 부분적인 공세를 포함하여 적극적으로 방어를 조직함으로써, 노동자계급운동의 진출을 저지하려는 군사파쇼의 도발을 분쇄해야 한다. 사회주의를 보다 공공연히 선전하고, 정치적·사상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하자.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민중은 적의 간악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광범위하게 진출하는 대중을 공공연하게 새로운 시대의 정치생활로 인도하는 데 있어서 진보정당을 합법적으로 건설하는 사업은 매우 중요하다. 이번 영등포 을구 재선거 투쟁은 진보정당 건설 투쟁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중요한 시금석을 제공하고 있다.
지금 8월의 현실이 주는 교훈은 한 가지 뿐이다. '범민주' 후보의 선거운동을 통해서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선거의 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진보와 혁신의 편에 확고히 서서 국회에 진출하여, 노동자계급과 근로민중의 이익을 견결히 옹호하며, 사회주의자와 힘을 합해서 민중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그러한 실천을 할 합법 정당, 진보정당이 아니라면 전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진전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그것이 영등포 재선거 투쟁이 우리에게 남긴 주요한 교훈이다.
부르주아지의 '새정치'를 주장하는 비부르주아 헤게모니를 분쇄하고 진보정당을 투쟁 속에서 건설하자. 그리하여 민중의 정치적 진출에 복무하는 해방의 무기로 만들자!
◆사설
우리는 분신에 반대한다
지난 5월 29일 옥포의 대우조선에서는 두 분의 노동자 동지가 분신하였다. 박진석, 이상모 동지. 그분들의 무덤가에 새 풀이 나기도 전에 우리는 또다시 이종대 동지의 분신 소식을 듣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한몸 바쳐 민주노조가 건설된다면 다른 소원이 없다"는 기아산업의 대의원 이종대 동지의 유언은 우리를 침통케 한다. 언제까지 우리 노동자는 지긋지긋한 기업주의 권모술수와 배신에 이를 갈며 분신해야 하는가!
우리는 1,000만 노동자의 이름으로 '분신만은 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다. 아무리 기업주의 작태가 온몸을 분노케 하더라도 노동자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생명이 소중한 것임을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목이 쉬도록 '노동해방'을 부르짖으며 투쟁하는 목적은 생명을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존중하기에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고 억압하는 사회체제와 싸우고 있다. 싸움 속에서 우리는 죽는 것에 연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분신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노동자계급을 해방시키는 일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어느 나라의 혁명사에 '노동자의 분신'으로 해방이 성취된 적이 있었던가? 노동자계급이 궁극적 승리를 쟁취하는 길은 분신에 있지 않다. 노동자계급의 승리의 비결은 과학으로 노동자의 의식을 무장하고 모든 노동자를 해방의 깃발 아래 결집시키는 데 있다.
이제 우리는 분신 노동자의 초상 앞에 절을 하고 그분 이름 앞에 열사의 칭호를 붙이는 것으로 자족해서는 안 된다. 바로 그러한 우리들의 '추모 행위'는 또 다른 노동자의 무모한 죽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분신을 미화하고 그 의미를 과장하는 어리석은 것이 관습처럼 통용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은 성남 지역에서 있었던 사건의 보고이다.
용인·성남 지역에는 노동자와 학생을 포함하는 '열사정신계승협회'가 있다. 이 협회의 창립준비 과정에서 (아마 1988년일 것이다) 열사의 수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 논쟁의 쟁점은 용인 외국어대의 한 학생이 열사에 속하느냐였다. 사정은 이러하다. 외국어대에서 농성 중 이 학생이 띄위를 침범하지 못해 학교의 연못에서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한다. 결국 논쟁은 이 학생이 투쟁과정에서 숨졌으니 열사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결론 내려졌고 이 학생까지 포함하여 '6인 열사정신계승협회'가 되었다고 한다.
노동자, 학생의 죽음에 대한 추모 행위가 도를 지나쳐 미화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식의 미화가 단지 우리의 반대파의 비웃음을 사는 데 그친다면 그리 커다란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혼란시키고 때로는 투쟁의 대오를 약화시키기까지 한다면?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종교에 스스로 속박당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 왔다. 성남의 '6인 열사정신계승협회'는 열사라는 칭호에 속박당한 운동권의 한 단면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전태일 열사로부터 배워야 할 정신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의 피땀을 짜내어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된 기업주에 대한 격렬한 증오와 기업주의 탐욕의 제물이 된 동료 노동자에 대한 깊은 사랑, 그리고 현실을 변화시켜 내고자 하는 끝없는 고뇌와 실천이다. 분신 자살의 행위 그 자체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전배일 열사를 높이 숭배하는 것은 열사가 살아간 그 정신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죽음의 과장과 미화, 분신에 대한 추수적 추모행위는 노동자계급이 취해야 할 태도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분신 노동자 동지들의 삶을 우리가 주의깊게 바라보면, 모든 분신 동지들은 정의를 불같이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그 불같은 정의심 이면에서 깊은 패배주의가 깔려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 한목숨 불사르는 길 이외에는 더이상 출구가 없다." 이것이 분신의 외침이다. 그러나 이 외침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태도와는 전혀 무관하다.
오늘날 부르주아지에 대립하고 있는 모든 계급 중에서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진정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물려준 대공업의 기초 위에 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해 나갈 사명을 갖는 주체, 세력,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다. 현재는 자본가의 것이지만 미래는 노동자의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현실이 아무리 촉박하더라도 질망하지 않는다. 그는 압울한 현실을 광명한 미래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 분신의 분노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노동자의 해방사상을 퍼뜨리는 데 매진하며, 분신의 고통보다 더 독한 인내로 시련을 이겨내며, 장기의 투쟁을 조직한다.
◆혁명적 노동자는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그는 현재 모 지역의 노조위원장이다. 그가 노동조합운동에 뛰어들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의식이나 결의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공장생활 12년 째 그는 책과 담쌓은 지 오래이며 누구한테 노동운동에 대한 강의 한 번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위원장님'이라 불리우고 있다.
위원장이 되고부터 사장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 영 딴판이다. 전에는 사장이 그를 맡긴 기계의 부속품 한 개로밖에 취급하지 않았다. 지금 사장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의 비위를 맞추려 한다. 어쨌든 이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위원장이 되고부터 그는 말 못 할 애로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돈으로 사람을 궤려 삶으려는 사장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도 그 자리에선 당당했으나, 돌아선 자리에선 "그 돈 먹어버려……" 하는 좋지 않은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또 지역에서 무슨 행사만 있으면 찾아오는 형사들이 어쩌면 부담스럽지 않다. 대놓고는 뭐라고 하지 않으나, 그놈들의 '뱀눈'만 보아도 기분이 잡힌다. 제일 피로운 것은 조합원들이 그의 말을 잘 받아주지 않았을 때이다. 어쨌든 설득할 구변도 없는 처지라, 그냥 술 한잔 하면서 "나는 언제라도 위원장 자리 내놓을 맘 있다. 그러나 내가 하는 동안만은 날 밀어주라"고 새겨놓고 통사정한다. 조합원들이 '뭔가 교육이 되어야' 노동조합도 잘 굴러갈 것 같아, 지역에서 실시하는 공개단체의 교육이 있으면 조합원들을 가능한 많이 보내곤 한다. 현대 그는 정작 너무 바빠서 교육을 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여, 그는 노동운동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그러나 가슴 속에 묻어둔 깡다구 같은 신조가 있다. 위원장은 노동자의 이익을 배신하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또 그러다 감방에 가게 될 때 기꺼이 갈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까짓것 노동조합을 위해 이 한 목숨 불살라 바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돈 벌려고 공장에 들어와 일하는 노동자로서 사장이 휘두른 수표더미를 뿌리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 유혹에 넘어가기 쉽기에 오늘도 전국에 수많은 어용노조 위원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 안기부나 경찰서 대공과에서 파견된 형사들의 직접·간접적인 협박도 이겨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너, 이 새끼 빨갱이 아니?" 하며 죽일 듯 달려드는 형사들의 폭력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앞에 굴복하고 말지 끝까지 전투적 태도로 일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지도자로서 노동자의 이익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위원장의 어려운 직무를 성실히 해냈다는 것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투쟁이 격화될 때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 감옥도 불사할 결의까지 가진 위원장이라면 그는 참 훌륭한 분이다.
하지만 현실의 계급투쟁은 깡다구 같은 신조 하나로 버티는 노조위원장에게 훨씬 복잡한 문제를 제기해 놓고 있다. 필사즉생!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승리할 것이라는 단순한 신념으로써 대처했지만 패배하는 투쟁 또한 많다. 150여 일의 장구한 투쟁을 벌인 울산 현대중공업 투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정주영이 국가권력을 움직이는 한, 보너스 투쟁마저도 국가권력과의 정치투쟁이 될 수밖에 없으며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국가권력을 세우지 않는 한, 노동자계급의 권리는 궁극적으로 보장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89년 봄의 치열했던 투쟁은 각 지역마다 훌륭한 노동 투사들을 배출하여 놓았다. 이들은 집회와 시위만 있으면 화염병으로 무장하고선 신명 나게 진압경찰과 싸울 결의와 태세를 이미 몸에 익혔다. 그런데 싸움이 끝나고 공장에 돌아오면 아무 할 일이 없이 논다. 노조위원장 몇 간부 역시 이들에게 어떤 전망·사명·임무를 제시하지 못한다. 조합원들은 교육단체에 보내고 자신은 바쁘다는 이유로 학습을 기피하면서 통박과 얕은 경험으로 노동운동을 이끌 수 있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 감옥갈 결의와 죽어버릴 수 있는 깡다구로 노동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이다.
노동조합운동이 사회주의운동과 결합되지 못하고 사회주의운동의 안내를 받지 못할 때 노동조합운동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다.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운동이 전부가 아니다. 더 크고 더 복잡하며 더 고통스럽지만 대한민국의 땅에서 착취를 폐지시키고 그럼으로써 모든 민중을 해방시키는 사업 곧 사회주의운동에 눈을 떠야 한다.
1. 학습을 하지 않는 자, 사회주의운동에 들어설 입장권이 없다
우리가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할 때를 되돌아보자. 우리는 노동조합이 건설되어 노동자가 사장에게 굴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미래를 꿈꾸며 노동조합에 관한 지식의 흡수에 열중하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없는 시간을 쪼개어 한자말이 주는 생소함과 싸우며 노동법을 읽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진지했던가!
아는 게 힘이라는 상식은 사회주의운동의 영역에 들어와도 여전히 타당하다. 아니, 사회주의운동은 노동조합운동에 비하여 훨씬 광범위하고 심오한 지식을 요구한다. 사회주의이론은 노동조합운동이론과 상대가 안 되는 폭넓은 문제들, 역사와 사회의 발전에 관한 이론과 자본주의 운동법칙에 관한 이론과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전술 그리고 이 모든 문제, 세계의 운동에 관한 철학을 갖추고 있다. 사회주의이론은 인류문명의 합리적 요소들을 계승하고 노동자계급의 요구에 부응하여 만들어진 노동자계급의 정신적 무기이다. 지금까지 어떤 부르주아 학자도 사회주의이론을 격파할 수 없었다. 그것은 진실하기 때문에 전능하다.
노동자가 자신의 의식을 사회주의로 무장하는 데에 있어서 필독서를 든다면 마르크스·엥겔스 공저 《공산당선언》과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꼽을 수 있다. 《공산당선언》은 마르크스 사상의 모든 중요한 요소를 집약하고 있는 가장 기초적이면서 가장 결정적인 문헌이다. 처음 읽는 분에게는 무슨 말인지 모를 수 있다. 풍부한 사상을 몇 마디로 압축해 놓았기 때문에 여러 번의 독서를 요구한다. 선언을 외울 수 있는 정도까지 친해지는 것, 그것이 사회주의이론에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도달하는 지름길이다. 이때 보조적 교재를 추천한다면 포스터 저, 동녘출판사, 《사회주의운동사》를 들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정신적 무기의 보고는 《자본론》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가 그 궁핍과 역경의 세월 속에서 40년을 공들여 만든 노동자계급의 성경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제도에 대한 격렬한 고발문이자,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완벽한 과학서이자, 어떻게 사물을 대할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혁명적 노동자의 철학서이다. 그만큼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자본론》은 유감스럽게도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다. 책의 양이 방대할 뿐더러 책의 길목에 있는 화폐에 관한 이론은 정말 초보자를 당혹케 한다. 읽어도 읽어도 아무리 읽으려 해도 머리에 들어오는 내용이 없어 책장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게 우리의 일반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혁명운동이 발달해 있고 노동자계급이 당대의 민주주의운동을 지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영도하는 나라에서는, 그 나라의 혁명적 노동자는 감옥에 가서도 이 《자본론》을 탐독하였음을 우리는 잊어선 안 된다. 모든 가치 있는 일은 피와 땀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제 무식을 자랑으로 여기는 풍토를 제거해 나가야 한다. '잘났다, 잘났어, 무슨 놈의 책이 밥 먹여 주나?' 하며 학습하는 노동자의 진지한 자세를 조롱하는 노동자가 오히려 조롱받아야 한다. 아직까지 무지가 인류에게 도움된 적은 없다. 또 노동운동은 과학과 무관한, 헌신과 결의만으로 해나가는 어떤 것으로 인식하는 선배 노동운동가들의 몰지성에도 단호히 쇄기를 박아야 한다. "골방에서 책이나 뒤지고 이빨싸움이나 하는 게 노동운동이 아니다. 네가 노동운동에 뛰어들려면 노동현장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점잖은 엄포를 놓는다. 그러나 그 선배운동가가 현재 노동운동에 어떤 의식을 불어넣고 있는지를 보라. 제법 조합주의를 넘어서 민주주의·민족주의를 퍼뜨리는 정도가 아닌가?
남한의 혁명적 노동자는 자신의 사상과 조직을 세우기 위해 과학적 사회주의를 열렬히 학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혁명적 노동운동이 독립하여 자신의 조직을 만들어 나가야 할 운동의 시초이다. 출발을 어떻게 하느냐는 운동의 미래를 좌우한다. 노동운동을 혼미케 하는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혁명적 민주주의, 무정부주의와 일선을 굳게 하고 과학적 사회주의로 무장한 혁명적 노동자의 대부대가 결집되는 곳에 노동자계급의 밝은 미래는 있다.
남한의 혁명적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전통이 없다. 그들은 선배 투사들이 패배한 현실 위에서 운동을 일으키고 있다. 사회주의에 대한 지독한 악선전이 횡행하고 있는 이 땅에서 남한의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로 가기 위해선 혁명적 노동자는 다른 어떤 나라, 다른 어떤 세대의 노동자보다 더 큰 각오와 불굴의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학습을 할 때 주의할 사항이 있다.
첫째, 학습을 해보아도 골치만 아플 뿐 현실운동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며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서 학습과 실천의 괴리라는 문제의 진상을 따져보자. 누구나 노동조합운동을 하다 보면 좀 알아야 하겠다는 필요에 직면한다. 또 마침 사귀어 온 학생 출신 활동가의 제의가 있어 노동자 학습 소모임은 순조롭게 틀을 올린다. 그런데 처음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책을 따라가기도 힘들거니와 현장의 실천과 무관한 지식만이 나열된다. 어차피 노동자야 깡다구로 싸울 줄 알면 뭣해 저런 책 저런 지식을 알아 뭐 하겠느냐는 회의가 인다. 바쁜 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학습을 그만둔다. 그런데 이런 일은 특정 노동자만 겪는 일이 아니라 거의 모두에게 일어난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디에 잘못이 있었을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처음부터 학습과 실천이 괴리되어 있었다는 데에 있다. 그가 학습에서 배운 내용은 정치경제학을 포함하여 한국의 사회정치 혹은 노동자의 정치학이었을 것이다. 즉 사회주의이론의 초보 학습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몸담고 있는 실천은 어디까지나 노동조합운동이다! 노동자의 경제학·정치학·철학을 학습한 것이 잘못은 아니다. 학습은 사회주의이론을 해놓고 실천은 여전히 조합운동의 틀 안에 갇혀 있었다는 데 문제는 있다. 새 술을 헌 푸대에 부은 것이다.
사회주의 학습은 노동조합운동의 보조물이 아니다!
둘째, 관념적·교조적 태도이다. 이는 주로 대학생 출신 활동가에게 많이 나타나는 태도이다. 그들은 책을 많이 보지만 자신의 현실을 조사·연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론을 배우되 그것의 정신과 방법을 자신의 실천에 적용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써먹길 좋아한다. 대개의 경우 이들은 사적유물론과 잉여가치론을 기본으로 믿고 있다. 불행하게도 마르크스가 발견한 이 위대한 이론이 그들에게는 너무 하찮게 취급된다. 그들은 끊임없이 당대의 가장 인기 있는 논쟁의 초점을 따라 다닌다. 조직노선에 관한 쟁점이나 사회구성체론에 관한 쟁점이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으면 자칫 운동에서 낙후된 것 같은 불안에 휩싸인다.
그런데 정작 노동자의 사실을 갈망하는 노동자를 만나 사회주의의 정신을 전달하는 데 철저히 실패한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추상적 개념들의 조합만이 앙상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를 파악하는 데서 그들의 무능력과 관념성은 극치를 이룬다. 그들은 현실을 조사·연구하지도 않았으면서도 이미 현실에 대한 확고부동한 견해를 고집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정신과 방법을 모르면서 개념과 논리만을 암기해버린 이러한 관념적·교조적 태도는 오늘날 학생운동이 노동운동에 전염시키고 있는 큰 해악 중의 하나이다. 이런 사람은 혁명을 위하여 학습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지적 욕구의 충족, 지적 과시를 위하여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 사회주의 즉 맑스레닌주의는 죽어 있는 교조가 아니라 행동의 안내자이다. 혁명적 노동자가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태도는 그것을 암기하여 자신의 유식함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동료와의 논쟁에서 화려한 지식으로 승리하기 위함도 아니다. 몰랐던 과학의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면서 느끼게 되는 깨달음의 기쁨에 안주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학습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세계를 변형하기 위함이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생명력 있는 것은 세계를 변형하는 행동의 안내자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맑스·레닌주의는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현실의 모든 방법에서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교조가 되어버린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자신이 처한 구체적 현실에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혁명적 노동자는 단지 교리를 암기하는 학생이기를 거부한다. 학습에서 배운 정신과 방법에 의거하여 자신의 현실을 부단히 연구하고 연구를 통해 얻어낸 방침을 실천에 옮긴다. 그는 이 작업이 힘든 것임을 뼈저리게 안다. 그렇기에 현실의 제 측면에 과학적 사회주의의 빛을 비추어 노동자계급의 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운동의 지도자를 소중히 여긴다.
2. 혁명적 노동자는 어디서 누굴 만나도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열정적으로 선전하고 선동한다.
혁명적 정세가 형성되기 이전의 평화적인 시기에 있어서 사회주의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은 선전선동이다. 선전은 한마디로 말하여 과학적 사회주의를 전파하는 일이다. 노태우는 작년 겨울이래 "체제전복 세력척결, 좌경용공불순세력" 운운하며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 최근에는 "체제전복을 기도하는 좌경의식화된 소수집단에 의해 폭력적으로 주도되고 있다"며 교원노조에 대한 탄압에 광분하고 있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습득한 혁명적 노동자는 이따위 상투적인 협박을 단칼에 날려버린다. "세상에 만수무강을 누리는 권력 체제가 어디에 있는가?"로부터 말문을 연다. 그는 자본주의 제도가 봉건 제도를 분쇄하면서 성장·발전해왔듯이, 스스로 사회주의 사회를 위한 물질적 전제들을 만들어내면서 몰락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주의 사회로의 전환의 필연성을 자본주의 경제의 운동법칙으로 설파한다. 그는 또 사회주의 사회의 내적 모순이 무엇인지, 사회주의 사회는 어디로 발전해 나가는 것인지, 왜 노동자계급의 독재가 요구되는 것인지, 당면한 민주주의 혁명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이 타 계급·계층에 대해 취할 태도는 어떤 것인지를 전파한다.
하지만 이렇게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을 전파할 수 있는 대상은 적어도 계급 사회의 조건 아래에서는 소수의 선진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선전은 주로 서클이나 소그룹으로 묶인 선진 노동자들 내에서 수행되므로 그것의 영향력은 그만큼 협소하다. 따라서 사회주의운동은 이와 같은 서클 내의 선전에만 안주할 수 없다. 적어도 대중이 혁명적 대의에 동의하고 스스로의 해방을 위한 싸움에 나서지 않는다면 사회변혁은 이뤄지지 않는다. 여기에서 사회주의운동은 대중 속에서의 선동을 자신의 활동의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주요한 수단으로 삼는다.
우리가 노동조합운동을 일으킬 때 어떻게 했는가를 되돌아 보자. 그때 우리는 공장에서 발생하는 사건, 열악한 근로조건, 부당한 처우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노동조합 건설의 필요성과 연관시켜 선동하였다. 환풍기 하나 없는 먼지구덩이 작업장에서 혹사시키는 기업주의 탐욕을 공격하면서 왜 기업주는 말로만 노동자를 가족처럼 대한다면서 이렇게 노동자를 기만하는지 폭로하고 다음으로 이 작은 문제 하나를 개선하려도 모두가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이는 노동조합을 위한 선동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운동에만 열중하는 사람은 공장의 근로조건에 관련된 문제를 떠난 사회·정치적 문제들에 대해선 입을 다문다. 예컨대 노동조합운동가는 인신매매, 성범죄 문제에 자신이 왜 개입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갖고 있지 않다. 입을 열려하라가도 지배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입을 열게 된다. 여자를 사는 남자가 있으니까 몸을 파는 여자도 있는 게 아니냐며 정말 담담한 지배자의 생각을 내뱉는다.
그러나 혁명적 노동자는 다르다. 그는 인신매매가 얼마나 중대한 범죄행위인가를 강조하면서 남한의 이러한 범죄는 철저히 자본주의 제도의 산물임을 주장한다. "자본주의 제도가 존속하는 한 인신매매는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남한의 백만 명이 넘는 여성 영재들, 우리의 누이·언니가 그 치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이 사회를 전복하는 길 외에 아무 것도 없다. 노동력을 매매하는 사회가 자본주의가 아니겠는가?" 하며, 사회의 특정 문제를 자본주의 사회의 철폐와 연관지어 선동한다.
과학적 사회주의에 안내받는 혁명적 노동자는 대중이 부딪히고 있는 당대의 가장 주요한 문제들을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개입한다. 개입하여 대중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조건을 파악케하고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길을 깨닫도록 대중을 돕는다. 혁명적 노동자는 술좌석에서 자취방에서 파업투쟁의 현장에서 조합의 교육시간을 통해서 쉬지 않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위한 당면 임무를 선동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공장에서 하루 열두 시간을 보내는 노동자로서 매일 발생하는 사회·정치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정립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선동은 투쟁, 투쟁, 투쟁하는 악을 지르는 행위가 아니다. 그럴듯한 구라로 사람을 웃기는 행위도 아니다. 묘한 말을 만들어내어 일시적으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 또한 더욱 아니다. 프롤레타리아적 선동은 진실이다. 사태에 대한 가장 논리적인 표현만이 선동에 힘을 준다. 그런데 문목사의 평양방문, 중국공산당의 유혈진압과 같은 사건은 관련되어 있는 여러 측면들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가 있어야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이 경우 사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는 일은 혼자로서는 불가능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혁명적 노동자는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일관되게 대변하는 정치신문을 소중히 여긴다. 그는 이른바 혁명적 노동운동권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저마다 신문을 발행하는 것에 분명하지 않는다. 그 스스로가 노동자계급의 건강한 눈으로 무엇이 노동자의 문헌인지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신문을 열렬히 읽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은 물어서라도 알아내며 한 번 알아낸 지식은 결코 혼자 알고 있지 않는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어떤 노동자는 정치신문의 주요기사를 떼어내어 공장화장실에 붙여 놓았다한다. 어떤 노동자는 주택문제를 조합원 교육시간에 강의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방침을 세우며 연구하고 또 직접 주택은행에까지 찾아가는 노력을 기울인 후에 매우 심공적인 대중선동을 끌어내었다 한다. 어떤 노동자는 노동조합신문에다가 정치·사회적 문제를 게재하며 해고된 어떤 노동자는 한겨레영업소에 근무하면서 함께 배달하는 후배 노동자들에게 시사건건 해설을 한다.
이것이 혁명적 노동자의 사회주의에 임하는 기본 태도이다.
3. 혁명적 노동자는 무엇을 위해 활동할 것인가? 그것은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건설이다
노동자계급이 가야 할 곳은 사회주의 사회이며,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 사회를 더욱 발전시켜 인류의 모든 성현들이 꿈꾸었던 인간의 낙원을 바로 이 땅에 현실화하라는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그러한 원대한 미래를 이제껏 지니고 있기에 노동자계급은 타락하고 패배주의에 빠지기 쉬운 다른 계급·계층과는 달리 항상 진취적이며 항상 낙관적인 태도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문제해결의 과학적인 열쇠를 가르쳐준다.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우선 노동자계급이 다스리는 국가를 창출해내야 한다. 역사의 어떠한 계급투쟁도 정치투쟁이었듯이, 노동자계급의 투쟁 역시 정치투쟁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이 이 사회의 모든 문제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맨 앞장에 나서야 한다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자기를 과시하기 위한 것도, 노동자계급이 어떤 도덕적 당위를 추구하기 때문도 아니다. 바로 당면한 민주주의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이 승리를 해야만이 자신의 국가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노동자계급이 가장 철저하게 싸울 때만이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은 이제 자신의 독자적인 정당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권력의 획득을 목적으로 싸우는 전투부대가 조직되지 않고, 어떠한 계급도 권력을 쟁취한 역사는 없다. 혁명적 노동자는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 그는 더 이상 노동조합운동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자대중의 계급적 각성·단련을 위한 훌륭한 학교이지만, 학교만으로 전쟁에 이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이제 이 계급전쟁을 승리로 이끌 부대의 장전과 그것의 유지·강화에 목숨을 건다. 아직 독자적인 노동자당이 없는 남한 현실에서 노동자당의 창건은 그의 모든 정열과 헌신을 바쳐야 할 당면 목표가 된다.
노동자당의 이념은 당연 '사회주의'일 것이므로, 여기엔 막대한 위험이 따른다. 6·25의 악선전이 전 민중의 의식을 세뇌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흉측한 개가 살아있는 현실에서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창건 활동은 일종의 모험일 수 있다. 그렇게들 충고하는 신중한 운동가들 또한 많다. 하지만 어찌할 것인가? '이것' 없이는 노동자계급에게 아무런 미래가 없는데……. 남한에는 10만 정보요원이 있으며, 아직까지 혁명조직이 심공리에 창건·유지되어 본 적이 없으며, 남한에는 중국과 같은 거대한 산야도 없고, 러시아와 같은 인접국가도 없는, 올라가면 휴전선이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이 협소한 조건에서 쉽사리 '당 이야기'를 하다간, 벽타기 공장행이나 다름없는 무수한 패배주의가 그의 의식을 찌부러뜨려도, 그는 결코 이 당창건의 과업을 거부할 수 없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살고, 이 일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친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일을 추진할 것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 노동자당 역시 그 씨앗이 커서 택일이 되고, 택일이 커서 줄기와 꽃잎을 피우며 무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평범한 상식을 상기시키고 싶다. 오늘날 3억의 민중을 영도하고 있는 소련공산당 역시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즉 1880년대에 아주 작은 마르크스주의 소모임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우리 역시 장차 커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당이 될 수 있는 혁명적 노동자 그룹을 만들며,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결합'을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 당건설을 향한 올바른 접근이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학습하고, 전파하는 것, 혁명적 노동자 그룹을 각 지역에 건설·강화하는 것, 전국적 정치신문을 통해 폭로를 조직하는 것, 이 세 가지 활동의 통일적인 전개야말로 1989년, 오늘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독자적인 조직을 창건하는 가장 올바른 접근이라고 우리는 주장한다. 수도권 지역과 같이 일정 정도 '사회주의운동의 역량과 경험'이 진행된 곳의 경우, 자신의 조직의 질을 더욱 높이면서, 그 조직이 혁명적 노동자와 함께 성장하는 조직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 요구되며, 아직 어떤 사회주의운동도 착수되지 못한 후진적인 지방의 경우, 먼저 사회주의자들의 핵심을 건설하고 정치신문과의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지역 내에서의 사회주의 활동을 개시하는 것이 올바른 방침이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 노동자당을 창건할 것인가의 문제는 사회주의운동이 일정 수준 성장했을 때, 그러한 현실 조건 위에서 계획·집행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이므로 지금 예단할 필요는 없다.
조직을 할 때, 제일 힘든 일은 사람의 파악이다. 성급한 조직가는 쉽게 사람을 조직하는 데, 이 경우 신중하지 못한 죄과는 반드시 받게 된다. 상당 기간의 공동실천을 거쳐야만이 사람의 여러 장·단점이 확인될 것이다. 이때 조직자는 조직 가입을 애걸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신참자에게 어떠한 고통스러운 길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계급에게는 위대한 역사적 사명이 있으며, 이를 위해 싸울 결의를 확고히 갖춘 사람만이 혁명적 노동자 그룹에 가입할 자격을 갖는다. 만일 우리가 욕심을 부려 다수의 노동자가 참여하는 대중적 조직을 꾸리고 싶은 욕구에 빠진다면, 그 조직은 혁명운동을 위해서나 노동조합을 위해서나 모두 해악적인 조직으로 조만간 전락해버린다는 현실의 경험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직활동에 있어서 어려운 일은 신속한 지도·지침의 제시일 것이다. 따라서 조직의 상부는 한시도 현실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상부의 지침이 올바르게 작성되기 위해서는 하부의 진실한 보고가 요청된다. 자신의 활동에 대해 보고하지 않는 자는 지침을 요구할 권리도 없다. 또 흔히 자신의 과오는 은폐하고 문제 없는 현실만을 보고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해결되어야 할 문제의 실태를 진실하게 보고해야만 올바른 방침이 나올 수 있다.
조직의 상부는 매사에 있어서 헌신과 일의로 하부에 모범을 보임으로써 조직의 규율을 세워나갈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 우월하다 하여 하부 조직원의 일을 전담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비록 현재의 일은 더디게 진행된다 할지라도 상부는 하부에게 일을 맡김으로써, 조직원이 일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것을 돕는다. 항상 모두 조직원의 역량을 집단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관심을 갖는 상부 조직원은 따라서 자신에게 집중된 정보를 독식하지 않고, 모두가 공유해야 할 부분을 선별하여 제공한다.
하부에서 활동하는 조직원은 지도부에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내길 좋아한다. 보고서를 통해 그는 자신이 겪은 좋은 체험을 여러 동지들과 함께 나누며 또 조직원들의 지혜를 요청한다.
혁명적 노동자당을 지향하는 모든 그룹은 자기 내부에 소부르주아적이고 룸펜적이며 심지어 부르주아적 요소가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유주의에 반대했던 모택동의 호소가 여전히 자기에게 적용됨을 잊지 않으며 부단히 자기 내부에 들어있는 비노동자적 요소의 척결을 위해 노력한다. 혁명적 노동자는 이 일의 어려움과 그것이 조직 안에서만이 조금씩 극복될 수 있음을 안다.
그들에게 '자기비판과 상호비판'은 자연스런 관습으로 되어 있다. 특별히 엄격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의미심장하게 비판과 자기비판을 수행하기 보다는 일상 실천 속에서 문제가 드러나는 그때그때 사안의 무게에 맞게 수행한다. 어떤 때는 매우 유연하고 부드럽게 어떤 때는 가차없는 무자비함으로, 그러나 이 모든 비판은 '자신에 대한 약속'이며, 동료의 발전을 위한 것이지, 그 이외 어떤 사심은 없다. 혁명적 노동자는 탁상공론을 싫어한다. 토론을 위한 토론, 비판을 위한 비판은 직감적으로 거부하며, 오로지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둔다. 문제점이 산더미처럼 제출된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시시콜콜하게 '평가'하는 게 아니라, 현재 주어진 역량 내에서 변화될 수 있는 폭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 실천에 옮긴다.
그들은 조직이 '자신의 모든 것'임을 안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조직의 명예를 더럽히는 말과 행동을 삼간다. 그들은 조직의 요구라면 아무리 밤이 들지 않더라도 기꺼이 따른다. 모욕스럽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상당 기간의 징계를 이겨낸다.
그리고 비록 자신의 견해와 다르더라도 다수의 조직원이 옳다고 내린 결의에는 반드시 합리적 요소가 있음을 알기에 흔쾌히 공동의 실천에 들어간다. 그들은 개인적 견해에 고집을 피우는 사람을 경멸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직은 지식인들의 토론장이 아니라 혁명가의 전투조직이기 때문이다.
혁명은 자아실현의 장이 아니다. 소부르주아적 활동가는 자신의 능력이 어떻게 평가되는가에 민감하며 항상 빛나는 일을 맡고자 한다. 그는 매우 단순하며 지겨운 임무를 흔쾌히 수락하지 못하며 견실히 수행하지도 못한다. 이점이 혁명적 노동자와 화연히 구별되는 점이다. 조직을 자기실현의 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맡은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언제라도 조직을 떠난다. 사적인 이해와 충동에 의해 조직을 버리는 이것이야말로 혁명적 노동자가 가장 경멸하는 자유주의적 독소이다.
세계를 변화시켜 나가는 혁명적 노동자는 타성에 젖어드는 것을 몹시 괴롭게 생각한다. 그는 항상 더 좋은 방안을 찾아서 고민하고 연구하며 실천한다. 창조적 활동, 그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본성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혁명적 노동자는 마르크스·레닌에 의해 정립·발전되어온 과학적 사회주의를 학습하고 그것의 정신과 방법을 현실을 연구하는 데 적용한다.
그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교리를 되풀이하는 데 취미를 갖지 않으며 어떻게 하면 대중과 함께 현실을 변화시킬 것인가에 온 정열을 쏟는다.
그는 혁명을 위해 모든 사적인 이해를 포기하며 어려움을 인내하며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엔 과감하다.
그는 노동자계급이 민중을 지적으로·도덕적으로·조직적으로 영도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음을 안다.
1989.8.21 정기철
◆ 선전전의 기치를 높이 들자
80년대 후반기 남한 노동자계급의 각성과 단결의 진전은 괄목할 만하다. 전후 최초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하여 노동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고 있다. 착취자와 억압자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또한 남한 독점자본주의는 최근 몇 해 사이에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독점자본은 막대한 이윤을 남기면서도 늘 '경제위기론'을 떠들고 다니면서 군사파쇼 정권을 앞세워 노동자들의 요구를 억누르고 있다. 그러나 독점자본주의의 발전은 노동자계급운동이 그 폭과 깊이에 있어서 중단 없이 성장해 나갈 것임을 보증한다.
그런데, 남한 사회주의운동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형성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를 위해서는 선전전에서의 주동성을 획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선전전
선전전은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을 전파하고, 남한 사회의 정치·경제체제와 그 모순을 밝히고, 당면한 남한혁명의 제 문제를 이론적으로 설파함으로써 사회주의운동의 대의를 선전하고, 여러 계급·계층들의 상호관계와 그들 사이의 투쟁과 계급투쟁에 있어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를 명확히 하고 사회주의자의 대열을 확대하는 데 초점이 주어진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 남한혁명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져서 그 해결책이 여러 갈래로 제출되고 있다. 여러 방면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당면한 민주주의 혁명을 서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조류가 형성되고 아직은 미흡하나 자신의 강령들을 제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이론적인 문제들이 과학적 사회주의의 선전과 옳게 결합되지 못함으로써,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이와 함께 노동자계급운동과 민중운동의 진출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근래에 들어와서, 부르주아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가계급과 노태우 정권은 소위 <이념논쟁>을 도발하였는데, 이로부터 <좌익척결> 공세로 이어지는 선전전이 가열되어 왔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 결성되어 활동하기 시작하자 이를 곧바로 좌경세력으로 몰아부치다가 동일 문제를 기화로 <좌익척결>을 구호로 내세우고 이념·선전전을 전면화하고 탄압에 돌입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듯이, 특히 우리나라 노동자해방의 조건을 따져 볼 때 어느 나라보다도 더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전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노력을 두 배나 더 기울여야 한다. 6·25 민족해방전쟁과 사회주의운동의 패배 이후, 역대 파시스트 정권의 가혹한 탄압 아래 혁명적 사회주의운동은 초토화되어 왔으며, 대중의 적색 콤플렉스가 강화되어 왔다. 심지어는 개량주의적인 혁신정당도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관제 사회주의정당이 존재하기는 하였으나, 의회정치의 장식품 노릇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또한 모든 민중운동을 불법시하는 엄혹한 파시즘 체제 아래, 대중의 적색 콤플렉스라는 사회심리적 조건과 무소불위의 안기부, 보안사, 그리고 경찰조직 등 파쇼적 압박기구의 전횡과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의 잘 정비된 탄압기구'들의 감시체계가 우리 노동자계급 해방투쟁의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이 바로 남한사회의 특수성이다. 그러므로 남한에서 사회주의운동을 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선전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이를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유에서 선전전의 기치를 높이 들 것을 제안한다. 6월 민중항쟁에서 시작된 새로운 노동운동은 오늘의 남한 사회주의자들에게 바로 이것을 요구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닥쳐오고 있는 현대의 부르주아적 소유의 폐지를 선포하고 위대한 노동자해방의 역사적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사회주의의 깃발 아래 단일한 대부대로 조직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를 위해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혁명적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선전전에 떨쳐 나서는 일이다.
민중주의적 경향을 청산하다
"사회주의운동으로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반대로 모든 것을 잃을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지들이 있다. 민중주의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남한의 민중주의는 자신의 독특한 연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회주의운동이 말실된 남한사회의 새로운 조건 속에서 현대의 민중주의로 대두하였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선전전에 있어서의 열악한 상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군사파쇼의 폭압적인 탄압 아래 사회주의운동의 공공연한 활동이 봉쇄됨으로써, 민중주의적 경향이 역사 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오랫동안 비합법 활동에 찌들려서 골방에서 끼리끼리만 은밀하게 사회주의를 이야기하고 겉으로는 민주주의자로 위장하는 데 익숙한 나머지, 상황에 떠밀려 민중주의로 깊이 빠져 들어간 혁명가들을 우리는 사실 많이 보아왔다. 노동자계급이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내걸어야 하며 조직적으로는 그에 합당한 '대중정치조직'이나 '정치적 대중조직' 혹은 '혁명적 대중조직'을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지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말하지만 실천적으로는 아직까지 민중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비부르주아 사회주의자일 뿐이다.
또한 많은 동지들이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막연하게 혹은 명시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민중주의적 경향에 빠져서 사회주의적 임무를 방기하고 있다. 이론상으로는 민중주의에 반대하면서도 상황 그 자체의 힘에 밀려서 대중 속에서 사회주의를 선전·선동하고, 그 대열을 조직하는 일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임무를 민주주의적 임무로 제한하는 모든 경향은 민중주의이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강령과 혁명활동의 정제 위에 민주주의적 임무를 세우려는 경향을 지칭하며, 이제까지 민중혁명의 대열을 형성하는 데 기여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대중이 광범위하게 진출하는 오늘의 조건 속에서 계급역량을 강화하는 데 제한을 가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전화되어 버렸다. 민중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궁극적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다. 그것은 진정한 노동자해방의 사상이 아니라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러한 연유로 해서 노동자계급의 선진부분이 민주주의운동의 전위로서만이 아니라 그것을 영도해야 할 지도자로서의 역사적 임무를 내팽개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사회주의적 임무를 민주주의적 임무로 해소하고 노동자계급운동을 민중운동으로 해소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을 무장해제하는 것이다.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혁명의 강령을 하나의 사상으로 격상시키고 노동자들이 이것만 이해하면 선진적 활동가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지들이 많다. 그러나 이 동지들은 과학적 사회주의 없이 현실을 이해하고 노동자계급의 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을 계획적으로 지도해 낼 전위 투사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쉽게 너무나 자주 잊어버린다.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진정한 임무는 계급투쟁의 '선두'에 설 뿐만 아니라, 노동자해방을 위한 위대한 계급투쟁을 그 모든 방법에서, 그 모든 측면을 '지도'하는 데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주의는 단 한 순간도 궁극적인 목표를 잊어서는 안 되며, 언제나 프롤레타리아 사상을 선전하고 그것이 왜곡되는 것을 막아내며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계급투쟁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으로 스스로를 무장하고 현실을 계급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의 방도를 내오고 이를 관철시킬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새롭게 대두하고 있는 각성된 선진 노동자들을 민주주의자가 아니라 사회주의자로 성장시키는 데 무엇보다도 힘을 쏟아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우리 내부에 깔려 있는 민중주의적 경향을 일소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군사파쇼의 폭압과 극심한 이데올로기적 중압 속에서 사회주의자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민주주의자로 위장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술의 문제일 뿐이지, 새로운 '창조적인' 사상을 창출하여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남한의 민중주의자들이 그러한 남한사회에 걸맞는 혁명사상을 새롭게 창조하고자 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오류이다. 그런데 남한사회의 특수한 조건을 빌미로 삼아, 큰 길을 놓아두고 '새로운 길'을 찾아 돌아가려는 경향을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유물론자가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패배주의에 다름 아니다. 소위 직책 콤플렉스는 우리의 자칭 사회주의자들까지도 물들이고 있다고나 할까! 남한 현실의 특수한 조건은 오히려 우리에게 선전전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일깨워주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현실이 변화함에 따라 민중주의는 초기의 적극적 의미조차도 퇴색되어 가고 있음에랴!
선전전의 기치를 세우고
사회주의운동의 지반이 넓혀져 왔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확인된다. 우선 노동자들 중에서 단순한 정치적 개혁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막연하지만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많은 선진노동자들이 ('노동해방'이라는 의미가 개량주의적으로 축소되어 있거나 때로는 왜곡된 경우도 있지만) <노동해방>의 깃발 아래 모여들고 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회주의운동의 지반이다.
사단법인 평화연구원의 여론조사를 보자. 사회주의 성격의 정당 육성 문제에 대해서 조사대상자 가운데 공산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육성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57.2%, 공산당을 포함해서 다양한 정당들이 육성되어야 한다는 대답이 13.6%로, 70.8%의 국민들이 사회주의 정당 육성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동아일보 88년 8월 24일자) 6·29 이후 민정당원 연수에서 어느 교수는 진짜 민주주의를 하려면 공산당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라고 주장했다가 파시스트들의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최근에는 민정당의 대표 박준규가 "건전한 사회주의는 용납할 수 있지만, 동양적 봉건주의와 일본식 군국주의를 결합한 기형적 사회주의(?)인 김일성주의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제야는 사회주의운동과 김일성주의운동을 구별(?)해 주기 바란다"고 인명하였다. (한겨레신문 4월 9일자) 물론 이것은 '헛소리'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주의란 판제 민주사회주의를 말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이 사회주의 정당을 인정하려는 대중의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오늘날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조직적 진출은 선전전의 기치를 높이 들고 우리의 전술을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이념적으로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 우리는 바로 지금부터 스스로 사회주의자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대중 앞에 나설 준비를 해야 한다. 이제는 신념을 숨기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 되었다. 이제 사 회주의자로서 스스로를 객관화해 나가야 할 때이다. 사회주의의 대열로 묶어세움으로써만이 민중의 권위부대요. 영도자로서의 노동자제급을 단일한 부대로 조직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출구는 없다.
물론 우리 활동의 기초는 여전히 비합법적인 비밀 활동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야기를 지킨 대중 앞에 갑자기 공공연하게 나서야 한다는 말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그것은 사회주의자를 지지하는 대중의 성장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본색을 드러내고 부르주아지들을 대체할 수 있는 정치세력으로 자신을 조직하고 대중의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를 위해서 사회주의운동의 공공연한 진출을 '시작하자'는 이야기이다. 무턱대고 모두 대중 앞에 자신을 노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처음에 우리의 대중은 백 명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과 운동의 성장에 따라 우리의 대중이 천 명이 되고 만 명이 되며, 어느 한 시기에는 백만이 되고 천만이 되어 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각자가 자기가 처한 조건 속에서 시작해야 한다. 각각의 활동영역에 따라 조건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우리는 공공연하게 사회주의 선전을 시작할 것이다. 또한 우리 전체를 대표하는 한 부분이 대중 앞에 공공연하게 나서기도 할 것이다. 사회주의자의 길을 밝히고 본격적인 선전전을 선전포고하면서, 우리의 시작을 알릴 것이다. 이를 위해서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태도와 자세의 전환을 우리가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당건설투쟁의 교두보를 장악하자
이러한 사실은 우리 투쟁의 초점이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우리의 전술은 지금까지 사회주의자가 스스로를 보위하고 자신을 형성하기 위해서 대중적인 참호를 파고 그 속에서 자신의 동조자, 지지자를 확보하는 것이 기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하여 많은 동지들이 노동자계급 대중 속에서 계급투쟁을 불러일으키고 그 속에서 선진 노동자의 그룹을 형성하고 그들과 결합하는 데 초점을 두고 활동해 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일부를 비밀리에 개인적으로 접근하여 사회주의를 전파하고 계급의 전위 투사로 묶어 세우려고 노력해 왔다. 대중적으로 민중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가운데서 사회주의의 기초를 세우려고 노력해 왔던 것이다. 즉 지금까지 우리가 민중민주주의를 객관화하는 데 힘을 쏟은 것은 우리의 거점을 확보하는 데 그 목표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활동은 계속 강화되어야 한다.
우리가 민중민주주의를 주요하게 선전한 성과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의 결성으로 나타났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은 민중민주주의의 범위 내에서 우리가 선전전을 벌어왔던 투쟁의 성과와 그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의 주체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서 전략·전술을 말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은 전략적인 의의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 진정한 의미의 민중통일전선이라고 보기에는 아직은 전혀 미흡하다. 우리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을 내세워 전략·전술을 말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불완전하며 따라서 불안정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그 자체가 정치적·조직적 동일성이 낮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민중혁명을 지도해야 할 노동자계급운동의 주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전략·전술은 노동자계급의 전위정당을 그 주체로 한다. 이 점을 잊지 말자. 통일전선 전략과 전술도 노동자당이 구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략과 전술은 자신들의 사회적·민족적 해방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와 근로민중의 투쟁을 지도하는 방법이자 기술이다." 따라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 '전략·전술을 전개하는' 일 주체로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정치적 지도의 기술로 완성시키는 것'은 오로지 노동자정당이다.
그러므로 이제 사회주의를 공공연하게 선전·선동하는 일이 보다 주요한 목표로 전환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선전·선동하는 일도 지금까지보다 명확하게 사회주의에 기초하지 않고 그와 결합되지 못한 체 이루어져 왔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민주주의 선전활동은 사회주의에 굳게 기초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필요하고 애매모호한 측면이 많았다. 예컨대 민주주의 혁명의 강령은 추상적으로만 선전되었으며, 충분하게 해석되어 하나의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제출되지 못했다. 다분히 구호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우리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 무능력과도 관련되는 일이지만, 그 정치적 무능력을 극복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사회주의의 기초를 스스로와 대중 속에서 확립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학적 사회주의만이 민주주의 혁명의 강령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출하고 선전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도 진정한 민중통일전선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선전전에서의 전술의 근본적 전환이다. 정치적으로는 민중민주주의 선전을 확대하면서 사회주의 선전을 공공연하게 진출시킴으로써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보한다. 조직적으로는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을 건설하는 투쟁으로 적극 나섬으로써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을 강화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최대 과제이다. 그런데 당건설 투쟁으로 나서자는 것을 곧바로 당을 건설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기 바란다. 지금의 우리 사회주의적 활동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전국을 살펴볼 때 실천적인 활동을 나름대로 조직하고 지속적으로 활동해 온 사회주의적 서클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학습서클조차도 많지 않다. 몇몇 서클들이 이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은 서클적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참으로 수공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서클운동의 차원을 넘어서서 조직의 통일을 도모하면서, 새로운 단계의 선전·선동으로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비합법적인 활동의 기초를 더욱 공고히 다져야 한다. 그러한 기초 위에서 좀 더 공공연하게 선전·선동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당건설 투쟁이 대중적인 지지를 획득하는 데서 선전전을 승리로 이끄는 일이 요청된다.
공공연하게 나서야 한다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사회주의라는 유령이"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정치적으로 진출하자 군사파쇼는 노동자계급운동이 혁명적 사회주의와 결합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이것을 부르주아 언론들은 <이념논쟁>이라 불렀다. 그것은 군사파쇼가 <좌익척결> 공세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우리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이 틀을 공공연한 선전전의 강으로 전화시켰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적극 대처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이 틀을 기화로 하여, 비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부르주아지들의 공포에 감염되어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듯 이구동성으로 "이 땅에 사회주의자는 없다!", "이 땅에 좌익은 없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부르주아지들을 공포에 빠뜨리면서 '유령'처럼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이 소문은 오히려 사회주의자들이 이미 존재하며 미래의 남한사회를 이끌어 갈 주요한 정치세력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따름이다. 그러하여 군사파쇼와 보수 야당들은 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해서 동맹(?)을 맺었다.
<좌익척결> 공세는 독점부르주아지의 케케묵은 수법이지만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한 위험이다. 이제 남한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온 민중을 향해 "자신의 견해와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경향을 공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사회주의의 유령이 떠돈다는 소문을 사회주의자 선언으로 대체시켜야 할 절호의 기회로 전환시켜야 할 때다. 노동자계급과 근로민중의 희망을 위하여! 사회주의자들이여, 선전전의 기치를 높이 들자!
1989.8.14. 장소현
◆ 부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의 깃발은 오르고
살아 춤추는 조국, 노동자 해방 위해
1989년 6월 24일. 장마비가 오락가락하는 부천종합운동장에는 44개 2,500여 부천 노동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노동해방을 외치고 있었다.
"살아 춤추는 조국, 노동자 해방 위해"
정녕 부천 노동 형제들은 살아 있었다. 4, 5월 정권과 자본가의 폭압을 뚫고, 아니, 살아야만 한다. 노동자가 해방되는 그날을 기필코 우리 손으로 맞이하기 위해.
"부천 노동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습니까? 그리고 오늘이 있기 위해 얼마나 오랜 날을 잠 못 이루어야 했습니까? 드디어 우리 부천도 우리의 무기, 우리의 조직, 부노협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 그리고 어디선가 시작된 노동해방가가 감동 속에 시작되었다. 연단 앞에는 "경축! 부노협 창립", "부노협이 앞장서서 전노협을 진실하지", "노동해방 만만세" 등의 수십 개의 플래카드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버님의 축음 앞에서도 노동해방의 그날을 위해 눈물을 감추었다는 서준모 동지, 딸 숙회만은 노동해방된 세상에 살도록 하겠다면 김영일 동지, 내동에서 도담동에서 한 손에는 우리의 무기를 다른 한 손에는 분노와 동지애를 나눠 쥐었던 부천 노동 형제들, 그들의 눈가에는 벌써 벌겋게 얼룩이 졌다.
오랜 논란 속에 얻은 결론은 "투쟁을 통해 조직을 건설한다"
어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부천의 노동운동 역시 그 출발은 87년 7·8월 대투쟁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한때 120여 사업장이 파업의 횃불을 쳐들었으나, 9·10·11월의 대탄압을 거치면서 민주노조의 아성을 지켜낸 노조는 부천의 두 기둥인 정원, 동양, 그리고 두 요람인 원방, 삼령에 불과했다. 그러나 88년에 들어서며 유한, 금산을 필두로 민주노조들이 다시 건설되어 나가면서 89년 임투에서 "싸우면 승리한다"는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던 연대의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이때 지역의 민주노조들은 이 열기로 5월에 노총 부천시험협의회 선거에 도전했으나 무참히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시험의회 참여는 이용노조에 대한 낙관적인 평가와 안이하기 짝이 없는 자신감에서 결정되었고, 그 결과는 연내에 대한 무력감과 패배의식이었으며, 그 영향은 오랫동안 부천 지역의 연대체 건설에 걸림돌이 되었다. 이어 7월에 들어서면서 대호, 원방의 위장폐업 분쇄투쟁이 인천 지역과 공동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투쟁을 통해 지역은 한편으로는 연대에 대한 무력감과 패배의식이 보다 깊어졌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연대체 건설의 필요성을 재차 절감하게 되었다. (또한 특이한 점은 위장폐업 분쇄투쟁을 거치면서 부천 노동 형제들은 인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와는 독자적인 활동 및 조직의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하여 9월에 들어 또다시 연대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데, 이때의 논점은 금속연맹의 지부 결성에 부응하여 부천지부를 결성하자는 안과 노총, 연맹과는 독자적인 부노협 내지 부천 금속노조 연합을 건설하자는 안으로 나누어졌다. 이 논의는 한 달여 집중되다가 노동법 개정투쟁이 전개되면서 일단 잠복하나 꾸준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논의는 몇몇 위원장과 지역단체들에 제한됨으로써 대중의 실천을 조직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무료한 논쟁만을 일삼고 실천적 결론을 내오지 못하는 한계를 가졌다.
11월 13일 노동자계급의 영웅적 투쟁은 부천 노동운동에 있어서도 새로운 일획을 그었다. 그간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지역 차원에서만의 사고와 실천에 제한되었던 부천 노동대중들은 타지역 노동 형제들이 어떻게 싸우고 싸워 왔는가를 피부로 느끼고 그들과 어깨를 함께하고 여의도로 행진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하고,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깨닫게 된 것이었다. 대중 스스로가 연대의 필요성을, 연대체 건설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그 형태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선택할 수 있었으며, 12월 3일 2,000여 노동자가 시내를 가로지르며 노동법 개정투쟁을 감행했듯이, 우리의 투쟁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고와 실천에 있어서의 비약적인 성장은 이후 연대체 논쟁에까지 이어졌다. 노동법 개정투쟁의 열기가 일단락되면서 지역에서는 다시 연대체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그 논점은 9월에 있었던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었지만 그 양상은 곽이했다. 금속연맹 부천지부를 주장했던 일부 노조는 노동법 개정투쟁을 일정 방기하면서 연대체에 대한 논의만을 전개시켰던 데 반해, 부노협을 주장했던 노조들은 연대체 논의에 앞서, 아니 올바른 연대체 논의를 위해서도 당면투쟁을 방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꾸준히 노동법 개정투쟁의 고배를 쥐었던 것이다. 그 결과 많은 노조들은 연대와 연대체는 어떠한 과정 속에서 그 실제적 준비가 이루어지는가를 피부로 경험함으로써 9월의 상층부만의 논쟁을 허용하지 않았다. 논쟁은 몇 차례의 회의와 공청회를 거듭했지만 금속연맹 부천지부를 주장하는 일부 노조의 완고한 반대와 '어떠한 연대체든 간에 다 함께 하는 조직의 건설'이라는 대중적 열망으로 결론을 얻지 못했다. (보다 주요하게는 당시까지만 해도 대중적 지도력을 가진 핵심이 부재함으로써 논의를 주도, 실천적 결론을 끌어내지 못한 점이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노동법 개정투쟁을 경험한 부천지역 노동대중들은 9월 논쟁을 반복하지는 않았다. 89년 1월 16일 공청회에서 "투쟁(임금투쟁)을 통해 조직(연대체)을 건설한다"는 노동자적 조직관을 대중적 결의로 선언하였던 것이다.
투쟁 속에 연대의 깃발은 세워지고
89년 임투를 맞이한 지역은 예년과 달리 조직의 건설이라는 또 하나의 과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오랜 논쟁 끝에 대중적 결의로써 얻은 우리의 성과요, 우리의 과제였다. 이에 따라 지역은 임금인상대책위원회를 결성 89년 임투를 준비하였는데, 2월에 들어 금속연맹 부천지부를 주장하면 일부 노조 중심의 쟁의대책위원회와 동합하고 전국의 흐름에 맞추어 <부천지역노동조합 임금인상투쟁본부>(이하 투본)를 결성하였다. 앞서도 밝힌 바와 같이 지역은 이번 임투가 단순히 임금인상투쟁에만 제한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만큼 투본의 구성 역시 임금인상의 효과적인 집단적 대응만에 맞추어질 수 없었다. 즉, "투쟁을 통해 조직을 건설한다"는 우리의 조직관이 단지 강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자연 바다에 이를 수 있다는 안이한 조직관과는 달리, 매우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준비가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투본을 구성하면서부터 우리는 연대체의 맹아를 심어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오랜 논쟁의 아픈 경험을 통해 연대체를 결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바, 지도부의 건설, 실무역량의 확보 그리고 대중적 지지의 획득, 이를 통한 지도력과 지도부와 대중 간의 결속을 계획적으로 배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이를 투본이라는 체계 속에서 실험시켜야 했다. 3월부터 터지기 시작한 신규 노조 결성투쟁에서 우리의 계획은 대중의 역동성과 투본의 헌신적 활동에 현실을 뒤쫓기에 바쁠 만큼 증폭되어야 했다. 대중적 연대의 파도는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화를 창조하였고 본부장과 상황실장은 이미 대중의 지도자로 부각되었다. 이는 4월 들어 정권과 자본가의 탄압이 본격화되면서 이에 맞선 대중들의 엄중한 투쟁 (4월 12일 두 지도자의 구속에 맞선 4·15 총파업은 그 대표적 예이다)을 통해 대중적으로 확인되었다. 심지어 정권과 자본가들조차 두 지도자의 구속은 그들을 확고한 지도자로 부상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스스로 자책하였으며, 4·15 총파업과 우일 등 공권력을 투입한 사업장의 경우도 노동자들에게 더 큰 단결과 공권력에 대한 부정 나아가 투쟁의 질을 높이는 데 계기가 되었다고 분석하였다고 한다.
6월 들어 몇몇 장기 파업사업장 문제와 구속자 문제가 종반전 임투의 장애물로 남아 있었지만, 지역은 상반기 투쟁의 최대 목표물인 조직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하여 6월 2일 투본 체계와는 별도의 조직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직 건설을 위한 일정을 진행시켰다. 이제 지난 논쟁에서 빛은 상층부 중심의 논의는 더 이상 가능하지조차 않으며, 어떠한 조직체를 선택할 것인가의 고민도 불필요했다. 대중은 이미 부노협을 선택하였고 연대체 건설의 주체로 들어섰으며 민주노조의 구성으로서, 자신들의 조직으로서 부노협은 자리하였기에 '참여하지 않으면 이용'이라는 분위기였다.
여기서 잠시 당시 투본 속보에 실린 <시급히 부노협을 건설하자>라는 논설을 일부 인용하면.
또한 우리는 이 과정 (4·15 총파업과 노동운동탄압에 맞선 5월 1일 투쟁)에서 지역 노동조합운동을 이끌어갈 훌륭한 지도자를 얻었다. 투본 본부장 한경식 동지와 상황실장 임동섭 동지가 바로 그들이고, 두 동지가 구속되었을 때 구속을 각오하고 투쟁을 결의한 지역 위원장단이 또한 그들이다. 노동운동의 최선두에서 노조탄압에 맞서 추호의 굽힘도 없이 투쟁해 나간 그들, 전국 어디에서 이만한 지도자들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 사실 작년 말 지역 연대체 논쟁 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역량은 '부노협'이나 '부천지역 금속노련 지부'나를 가늠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그러나 운동의 발전은 이러한 혼돈을 가르고 분명 우리 노동자의 갈 길을 결정할 수 있는 역량의 성숙을 가져 왔다. ...... 더 이상 회의와 주저는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에 대한 배신이다. 자! 우리 노동자의 협찬 진군 앞에 누가 막아서겠는가. 부천 노동자 단결 만세! 부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 만세!
그러나 조직소위의 활동은 '조직과 투쟁의 실천적 결합'이라는 대원칙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교훈을 남기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조직은 투쟁을 통해 건설한다"는 노동자적 조직관을 선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실천은 이 명제를 일면적으로 이해하여 실천의 성과를 조직하는 데 게을리했던 것이다. 사실 지역은 올 임투에서 많은 성과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조직하지 못하고 다만 관념적으로 "우리는 많은 일을 했다"라는 자족 속에 "따라서 조직만 건설하면 된다"라든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 속에 "이 문제(장기 파업사업장 문제와 구속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모든 성과조차 아무 것도 아니라는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활동가적) 결벽증에 사로잡혀 조직 건설의 좌우편향을 일시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지도부의 결단과 대중의 창의적 실천의 역동성에 힘입어 잠시나마 주춤했던 편향을 극복하고 부노협 건설의 일정을 강행하였다. 본부장 옥중서신에서도 "저는 징역살이 10년을 살던, 1년을 살던 괜찮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 부노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시대적 요구이며 노동자들의 요구입니다."라고 밝혔다. 정말 더 이상의 회의와 주저는 노조운동의 발전에 대한 배신이었다. 노동대중은 지역 연대체를, 강력한 우리의 조직을, 우리의 무기를 요구했던 것이다. 다만 남은 것은 지도부의 결단이요 강력한 지도력에 다름 아니었다. 우리는 경험하지 않았는가? 4·15 총파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4·15 총파업 계승하여 노동해방 앞장서자
4·15 총파업이 있은 지 3일 만에 우일 등 4개 파업사업장에 2,000여 백골단이 투입되어 지도부를 구속하고 농성중인 우리 노동 형제들을 강제 연행해 갔다. 당시 연행된 우일의 어린 여성 동지들 중 상당수가 '공부집행방해죄'로 구류를 살았다. 사실인 즉, 연행된 우일의 어린 여성 동지들은 백골단의 폭력 속에서도 한 치의 굴복 없이 부천경찰서에서 불법적인 '민중의 몽둥이'들에게 항의하였던 것이다. 심문에서 이름을 대라고 하면 사장의 이름을 대고, 구호를 외치고 일제히 심문을 거부하고 노동해방가를 부르는 등 불법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우일은 공권력이 투입된 지 한 달도 못 되어 기어이 승리를 쟁취했다. 삼령, 연경의 공권력 투입 시에도 30여 개 노조위원장이 단식 농성을 전개했고 반도의 공권력 투입에도 반도의 동지들은 끝까지 투쟁하여 민주파를 위원장에 당선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역은 3, 4월의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연대의 신화를 4, 5월 정권과 자본가의 족압 앞에서는 "공권력을 투입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깜다구의 신화로 계승한 것이다. 이렇게 투쟁 속에 건설된 부노협은 그래서 더욱 값진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해고자와 구속자, 이들을 보듬지 않으면 부노협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며 부천의 노조들을 민주노조의 구성인 부노협으로 하나라도 더 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동지들, 그리고 전노협 건설과 노동해방의 선봉이 되고자 투쟁의 보도를 걷고 뛰고 있는 우리의 노동 형제들, 그들은 이제 겨우 한 발을 내딛은 데 불과하다는, 이제부터가 그야말로 '싸움'이라는 각오로 이제는 한 손에는 노동해방의 이론과 다른 한 손에는 새로운 투쟁의 무기를 받아들이고자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부천지역 노동 형제들은 장대같은 장마비 속에서도 추호의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서야 할 자리에서 가야 할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승리를 향해 힘차게 진군하는 전교조 동지들!
전교조 문제를 둘러싼 공방전이 3개월째 접어드는 가운데 노태우 정권은 5월 28일 이래 40명이 넘는 교사들을 감옥으로 보내고 1천여 명을 해고시켰으며 이 통제 숫자를 계속 늘려나가겠다고 연일 협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한판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노태우 정권의 발악 앞에 1만 8천여 명의 단결로 출범한 전교조는 이제 끝까지 탈퇴각서를 쓰지 않겠다고 버티는 3천여 명의 교사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세는 이미 기운 것인가? 29년 만에 부활한 교원노조운동은 또 한 번의 좌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일이 이러한 양상으로 진행될 때 흔히 그렇듯이, 전교조의 안팎에선 '시기상조였지 않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보다 성급한 사람들은 분노와 함께 좌절감을 맛보고 있다. 물론 다른 쪽 끝에선 전교조 결성의 감격과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 교사들의 이러한 투쟁이 "전체 민중으로 하여금 단순히 학부모로서가 아니라 노동자·농민을 비롯한 전체 민중운동의 일원으로서 교사들의 투쟁에 지지, 동참하게 하였다" (노동자의 깃발, 23호, 34쪽)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삼성중공업 노동자들은 보다 소박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적당히 교과서에 나온 것이나 가르쳐 주고 주는 봉급이나 받아가며 이따금씩 학부모들이 건네주는 봉투나 적당히 챙겨가며 살아가면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나을 텐데, 요즘 같이 7-80도 되는 탱크 안에서 땀물을 줄줄 흘리는 것도 아니요 수십 미터 조종 위에서 다이빙하여 보기에도 끔찍스럽게 죽을 염려도 없을 뿐 아니라 그렇다고 불황으로 인해 정리해고될 걱정도 없기에 그저 가만히 있으면 평생직장으로서 파내 나갈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생을 왜 사서 하는가 의구심이 가는 곳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 · · 그러나 선생님들은 싸운다. 왜? 무엇 때문에? 그것은 바로 자주성 회복에 있기 때문이다." (삼성노보 6호, 1쪽)
이처럼 교원노조운동에 관한 부정확하고, 성급하며, 통속하거나, 그지없이 애매모호한 생각들은 폐넓게 퍼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교사의 지위와 교원노조운동의 역할, 이 운동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태도와 이 운동의 전망에 대해 정확히 해명할 것을 새삼 요구하고 있다.
교사란 누구인가?
부르주아계급의 온갖 대변인들이 " '시대의 사표'로 존경받던 선생님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노동자로 비하시키려고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는 소리를 높여갈 때 전교조 동지들은 신성한 노동을 천시하는 작태를 규탄하면서 자신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채, 국가 혹은 재단에 고용되어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임금노동자임을 분명히 밝히고 따라서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가 있다고 반박하였다. 교사가 노동자라는 것, 이것은 진실이다. 오늘의 교사는 더 이상 '만족하여 흐릿해하는 인텔리'가 아니다.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이루어진 교사 수의 증가와 이에 따른 특권적 지위의 상실, 장기근속자일수록 산업노동자에 육박해가며 동일학력 집단 중에서 가장 낮은 임금 수준.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비롯되는 노동강도의 강화 등으로 인해 임금노동자로서 교사들의 처지는 날로 불행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하락과 7·8월 대파업 투쟁 이후 노동운동의 급속한 발전은 교사들로 하여금 마침내 허구적인 중산층의식, 봉건적 신분관이라는 더러운 외투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참모습을 자각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교사가 임금노동자라는 사실만으로는 교사의 지위와 이들의 운동에 부여된 임무를 제대로 설명해낼 수 없다. 더욱이 임금노동자는 모두 노동자계급에 속하며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만의 대중조직이라는 등의 '오해'가 가미될 때 전교조의 투쟁방향을 잡고 교원노조운동이 당면 혁명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데 일대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교사는 임금노동자임과 동시에 정신노동에 전문적으로 종사하고 지식에 필요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지식인층에 속한다. 이 점에서 교사는 기자, 출판인, 연구원, 교육 약사들과 함께 근로지식인으로 불리우며 이들 근로지식인들은 고학력(대졸 이상)의 사무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지나 프롤레타리아트 등 기본계급의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계층으로 분류된다. 산업발전의 고도화는 중간계층 중 일부 특히 근로계층 중 다수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하락시킴으로써 이들의 생활방식과 의식은 점차 프롤레타리아트에 가깝게 되고 있으며, 남한 사회의 교사들 역시 점차 프롤레타리아트화 되어가는 집단이자 근로지식인 층에서 가장 프롤레타리아트에 근접한 계층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이해의 접근 이외에 교사는 교원노조운동을 통해 자신의 노동이 담당하는 사회적 성격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점에서도 당면 혁명의 목표를 공유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생산수단에 대한 독점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교육의 부르주아 독점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는 노동자계급의 주위로 결집하는 노동자계급의 동맹자이다.
교원노조의 성격
이처럼 교사가 임금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지식인이라는 사실은 다른 한편으로 교사들의 노동조합운동이 산업노동자들의 전통적 노동조합운동과 구별되는 특수성을 갖게 한다. "독재권력이 강요한 사이비 교육은 교원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렸고 교단의 존경받는 스승은 더 이상 발 붙일 수 없이 지식판매원, 입시기술자로 내몰렸다. 누가 우리더러 스승이라 부르는가?"라는 <전국 교직원노동조합 결성선언문>의 절규가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듯이 교직원노조운동은 잘못된 교육현실을 바로잡는 것을 자신의 일차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실제 많은 교사들은 단순반복 작업에 가깝고 육체적 소모가 심한 정신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신들의 정체적 상태에 심각한 불만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처우와 근로조건의 개선은 교육제도, 교육활동, 교육환경 등 보다 주요한 과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중간성과물로써 획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교원노조는 '직장의 민주화'를 가장 주요한 과제로 삼고 있는 연구전문직노조와 성격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연구기관노조원들의 노조가입 동기는 직장의 민주화 [64.7%], 근로조건개선 [21.6%], 임금인상 [4.9%] 순이다. 화이트칼라 노동조합론, 녹진, 70쪽) 이는 많은 교사들이 연구전문직 노조의 결성에 고무받고 흔히 이들 노조의 예를 들어 전교조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데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교사의 독특한 지위와 역할로 인해 교원노조운동은 초기부터 정치권력과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으며 이런 점에서 다시 연구전문직의 노조운동과 구별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자본축적의 수단인 노동력의 생산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함과 동시에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는 중요한 통로이다. 전교조 결성은 바로 이 통로에서 일어난 '반란'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일선 담당자인 교사들이 참교육의 실현을 외치며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였다는 사실 앞에서 지배계급은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문화적 위기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으며 특히 남한사회 지식인층의 55%에 해당하는 교사들이 지배계급의 하수인 역할을 저버리고 노동자계급의 편에 가담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불길한 징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전교조의 결성은 기능, 노무직 공무원에게만 허용된 공무원 단결권을 힘으로 획득하는 것으로서 만일 교직원노조가 합법화된다면 다음은 하급 사무공무원들의 차례인 것이다.
4.19 혁명 덕택에 들어선 민주당정권 치하에서도 교원노조운동이 합법성을 완전히 쟁취하지 못한 것처럼 이 운동을 무력화시키려는 저들의 의지는 단호하며 이것은 지금 전교조에 대해 가해지는 이데올로기적, 계도적, 물리적 공격으로 표현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정이 전교조의 합법성 쟁취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합법성은 일정한 정세 속에서 쟁취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합법화된 노조는 하나의 전술적 고지에 불과하다. 문제의 핵심은 이 운동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날로 확산되는 것 자체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가한다는데 있으며 저들의 대응 역시 그만큼 집요할 것이라는데 있다.
따라서 전교조의 결성과 합법화투쟁을 교원노조운동의 장기적 발전 전망 속에서 이해하고, 이 운동을 교사와 정치권력 간의 대립, 투쟁을 넘어서는 전민중적 투쟁으로 인식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역량부족과 공안정국을 내세운 시기상조론은 노조결성을 장기적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한 오류이며, 학생과 학부모를 참교육실현의 주체로 설정하면서도 실제 운동의 전개과정에선 단순히 지지를 얻어내야 할 이해당사자로만 간주한 그간의 홍보전술은 이 운동을 교사와 정치권력 간의 투쟁으로만 국한시켜 이해한 오류이다.
특히 5월 28일 전교조 결성대회로부터 시작된 전교조 사수투쟁을 참교육실현을 요구하는 교사들의 노조 결성투쟁으로, 그것의 합법성 쟁취투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달을 보지 않고 그것을 가리키는 손만 처다보고 있는 것과 같다. 전교조 결성 시기는 합법성을 쟁취할 주관적 정세가 되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합법성을 결코 부여하지 않으려는 노태우 정권과 장기적인 투쟁을 벌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교사 내부의 단결과 의식을 고취시키고 이 운동의 지지자를 광범하게 획득해나갈 조직적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공안정국 아래 자행되는 적들의 탄압이 '전교조 결성을 보류한 전교협'에게는 가해지지 않으리라고 보는 것 역시 공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교육민주화운동에 대해 예정된 탄압을 전교조 결성이라는 적극적인 공세로써 뚫고 나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다.
그러므로 시기는 빨랐던 것이 아니라 다소 늦었다. 즉 노동조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선진적 부분의 확고한 지향에도 불구하고 노조건설 방침을 보다 빨리 공식화시켜내지 못했으며 이에 따라 전교협 체제 정비와 교육악법투쟁으로 88년 하반기부터 급속히 달아오른 대중적 열기를 내부역량으로 조직하고 노조건설의 구체적 준비에 들어가야 할 소중한 시기인 겨울방학을 지도부 내의 논란으로 소모한 것이다. 그 결과 결성 시기를 5월 중순으로 잡게 되어 노동자계급의 임금인상투쟁과 시기를 맞추지 못하였으며, 전교조 결성에서 여름방학이라는 대량징계 시점까지의 기간을 단축하게 하는 등 보다 불리한 조건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88년 말에 노조결성 방침을 확정하고 결성 시기를 4월 초로 잡지 못한 것은 운동의 진전에 따라 극복되어야 할 한계이지 교원노조운동의 성격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결정적인 오류라 할 순 없다. 이러한 비속함은 노조건설과 관련한 주요한 토론들이 사업일정과 무관하게 진행되고, 치밀한 사전 준비와 교육 없이 '전교협을 지지했듯이 전교조 결성을 지지한다'는 단순한 동의에 기초하여 대세를 휩쓸어잡듯이 노조결성으로 달려간 데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났다.
전교조의 승리, 노태우의 패배
전교조의 합법화를 반대하는 것은 물론 그 실제까지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노태우의 거듭된 명세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전황은 이미 노태우 정권이 패배하였음을, 교원노조운동이 승리를 향해 힘차게 진군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핵심간부 40여 명을 구속시켰지만 탈퇴각서 제출을 거부하고, 해고되어도 동요하지 않으며, 감옥 가는 것을 이미 각오한 교사는 3천 명에 이른다. 바다 속으로 쓸어넣지 않는 한 이들은 당면 투쟁의 선봉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감옥을 교대로 오가면서라도 교원노조운동의 횃불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우선 이들에 의해 전교조는 건제할 것이다. 교사대중들의 상태 또한 양호하다. 탈퇴각서를 제출하였지만 이들이 전교조를 탈퇴한 것은 아니다. 공공연한 활동을 일시 중단했을 뿐이다. 일반 이천 명이 넘는 교사가 조합비를 계속 내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확인해 준다. 전교조를 없애버리겠다는 노태우 정권의 시도는 일단 실패한 것이다.
이제 전교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궁지에 몰린 적들의 야만적인 탄압이 계속되는 동안 전교조는 상급조직을 공개하고 학교 내 분회와 분회원을 비공개로 하는 이중체계를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 2학기 개학과 더불어 탈퇴각서 제출자를 중심으로 분회 개건을 서두르고 내부 선전사업을 강화하는 등 조직정비사업을 치밀하게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전교조는 학부모의 지위와 그들의 현재 의식 상태에 기초한 적극적인 홍보사업을 펼쳐가야 할 것이며, 노동자계급을 위시한 민족민주운동 진영과의 연대에 있어서도 지금까지의 선언적 연대에서 하반기 노동법 개정투쟁 등의 대중적이며 구체적인 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로 발전시켜가야 할 것이다.
80년대 초 소수의 선진적 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그간의 교육민주화운동은 87년 9월 전교협 결성과 88년의 교육악법개정투쟁을 거치면서 대중적 저변을 넓혀 왔다. 전교조 결성과 3개월째 접어드는 전교조 동지들의 투쟁은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하여 그동안 교사집단 내부에서 논의되어 온 '참교육 실현'이라는 이 운동의 대의를 사회의 전면에 제기함으로써 그리고 느슨한 협의체 속에서 분산적으로 활동하던 개인들을 전국적 체계를 갖는 단일 대중조직으로 묶어 세움으로써 교원노조운동의 발전에 중대한 진전을 이룩하였다. 이제 들리는 것은 승리의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전교조 동지들의 함성과 궁지에 몰려 발악하는 노태우 정권의 비명소리 뿐이다. 교원노조운동 만세!
1989. 8. 17. 김진욱
◆ 민중운동의 당면과제와 전술에 대한 테제
1. 6월 투쟁 이후의 모든 사람이, 노태우까지도 민주화를 고창하던 한 시기는 지나갔다. 88년 12월 이후 서서히 불어오던 반동의 역풍이 분록사 방북 이후 휘몰아치는 광풍으로 변하였다. 이 광풍이 다소 가라앉는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2. 6월 투쟁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했던 군사파쇼 통치체제의 위기는 노태우에 의해 훌륭히 수습되었다. 새로운 정치체제는 88년 4월 총선에 의해 기틀을 갖추었다. 이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그 이념과는 아주 거리가 먼 모습으로 실현되었다. '이념'과 거리가 아무리 멀더라도 그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부르주아 정파들 사이에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부르주아 정파들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이탈하고 아주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말봉사나 때때로 할 따름이다. '배신당한' 민중만이 외로이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떤 사람들은 보수대연합체제라고도 부른다.
3. 물론 4월 총선 이후에도 아직 남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이 5공 비리 정산문제이다. 그것은 부르주아 정파들 모두의 공통과제였다. 그들은 천천히 오랫동안 소란을 떨면서 (정치는 쇼다. 이것은 장세동의 말이다. 그러나 정치의 무대에 민중이 나섰을 때 더 이상 정치는 쇼일 수 없다.) 적당한 해결책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중심으로 한 진정한 민주화, 즉 소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에게도 정치적 자유를 주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4. 88년 4월 이후 민중운동의 당면과제는 역량을 강화하고 대중 속에 진지를 강화하는 것과 함께 민주화를 한 치라도 더 철저하게 실현하는 것으로 주어졌다. 싸움은 분명히 유리한 조건에서 출발했다. 민주화는 '국민적 합의'였다. 이전 시기에 모든 부르주아 정파들도 민주화를 약속했다. 최소한 말뿐이라도 있다. '여소아대' 국회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88년 4월 이후 1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민주화는 거의 진척이 없다. 여기에는 민중운동이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한 전술적 실패가 관련되어 있으며, 소부르주아 통일운동이 놀았던 역사적 역할의 부정적 측면은 여기서 부각된다.
5. 참으로 뜻밖에도 그 중요한 역사적 시기에 소부르주아지, 특히 학생운동과 진보적 인텔리, 종교인들은 '통일운동'을 전개하고 나섰다. 소부르주아 통일운동은 2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1차 통일운동은 조성만 군의 죽음으로부터 서울올림픽의 시기, 2차 통일운동은 문목사 방북으로부터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의 시기에 전개되었다. 서울올림픽 후 한때 학생들은 통일운동을 중단하고 이른바 '전·이 구속투쟁'을 전개하였다. 올림픽 이전 통일운동에 대한 민중의 냉담한 반응이 그들을 반파쇼 투쟁으로 끌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당면의 주요과제가 무엇인지, 자기의 역사적 임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단순히 대중적 지지를 얻어야 되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노태우의 중간평가 연기, 문목사의 방북 사건은, 그리고 예정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은 다시 학생운동을 통일운동으로 끌고 갔다. 다시 민중운동은 파시스트, 독점자본과 협저운 악전고투를 벌이는 부분과 그 싸움의 현실을 외면하고 통일운동으로 달려가는 부분으로 양분되었다.
6. 이러한 순간에 전민련은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여 정치적 지도의 책임을 방기하였다. 전민련은 어느 싸움에 민중운동의 역량을 집중 동원할 것인가를 분명히 하고, 문익환 목사의 방목에 대해서도 그것이 개인행동임을 분명히 했어야 한다. 그의 방목에는 단순히 시기상의 문제 뿐만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소부르주아 통일운동 전체의 문제이며, 그들의 통일관, 통일노선의 문제이다.
7. 지난 1년 여 동안 소부르주아 통일운동의 번창으로 말미암아 집권 초기 노정권의 기본 전략—북방외교, 남북대화로 국내문제, 민중의 민주화 요구를 희석한다는 통치전략—은 다른 형태로 관철되었다. (노태우의 각본에 따르면) 북한이 말아 주었어야 할 악역을 남한의 '주사파'와 화생운동이 말아 주었다. 그리고 결과는 더욱 나쁘다. 국민적 관심의 분산은 실현되었으며 극심한 혼란으로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아우성치는 민중운동의 역량도 분산된 것이다. 소부르주아 통일운동은 작은 성과와 큰 손실을 민중운동에 남겨 놓았다.
8. 소부르주아 통일운동은 파시스트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부르주아 정파들에 의해 외면당하고 부르주아 언론들에 의해 조롱당했다. "침부지들!"이라고. 노동자계급도 그들을 어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그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만약 노동자계급의 정치역량이 그렇게 미약하지 않았더라면 진정으로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길로, 과학적 통일노선으로 그들을 이끌었을 것이다.
9. 소부르주아 통일운동이 부르주아지에 의해 부침히 케어지면서 소부르주아지가 민중운동을 이끌어온 한 시대는 종결되고 있다. 그들은 이미 6월 투쟁에서 총선 시기에 이르는 기간까지의 군사파쇼 통치체제의 위기의 시대에 현실파악의 능력과 정치지도력의 한계를 드러내었다. 이 새로운 시대는 유신시대와 5공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했던 것이다. 당시 민중운동의 실패의 주된 책임이 고집스런 그들에게 있으나 그 책임은 정확히 붙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총선 이후 1년여의 기간에 다시 그들의 정치적 무능, 환상심, 비현실심, 낭만성—정치지도자로서 가져야 할 것들과 대립되는 모든 것이 전국민적 차원에서 폭로되었다. 이제야말로 노동자계급이 나서서 민중운동을 이끌어가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왔다. 그리고 소부르주아지의 현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과학으로 대치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 때 민중운동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코 소수자의 입장을 벗어날 수도 없다.
10. 새로운 위기는 사회의 밑바닥으로부터 성장하고 있다. 그것은 군사파쇼 통치체제의 위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것은 토대로부터의 위기이며 자본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진정한 위기이다. 그 위기에는 6·29 선언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으로부터 유래하는 경제위기의 주기적 도래, 그것과 결부된 계급투쟁의 격화, 그리고 그것이 증폭시키게 되는 정치적 위기의 결합에 의해 초래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위기이다.
11. 지금 이미 경제위기는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3년 연속 12% 성장이라는 호황기에 잉태된 경제위기는 한국자본주의가 근거해 온 천혜의 축적 조건——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세계 최고의 산업재해율로 대표되는 최악의 근로조건과 저임금 속에서 불평 없이 노예처럼 일하는 우수한 노동자대군의 존재——의 변화와 더불어 정부와 개별 자본가들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여전히 부르주아 정파들이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정치적 문제도 남아있다. 지방자치제 실시, 내각제 개헌, 92년 봄 총선 등 남한식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 그들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2~3년간은 지난 2~3년간에 못지않은 역동성을 가진 시기가 되지 않을 수 없다.
12. 87년 6월을 전후한 시기의 정치적 위기와 다른 위기——본질적으로 경제적 위기인——가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위기를 혁명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역량과 준비는 민중운동에게 없다. 그러나 이 시기를 통해 민중운동은 대중에게 진정으로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주는 하나의 국민적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수는 있다. 이 시기에 민중운동이 국민적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지 못하면 앞으로 상당 기간 부르주아 정파들의 후비대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사회혁명과 통일을 우리 세대에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13. 부르주아지는 이번 위기만 극복하면 남한 자본주의 체제, 부르주아 지배체제를 장기적 안정국면에 올려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가오는 위기에서의 투쟁의 결과는 그만큼 중요하다. 실제로 민중운동이 패배한다면, 또다시 우리의 전술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부르주아지의 꿈이 실현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14. 지금 민중운동은 방어적 투쟁을 하고 있다. 민중운동이 수세적 입장에 있는 것은 근본적인 역관계에서 유래하는 것이며 강한 적이 진술적 후퇴를 끝내고 공격해 오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민중운동의 진지방어진은 매우 어려운 조건에서 수행되고 있다. 그것은 지난 공세기에 반드시 빼앗았어야 하는 파오악법이라는 고지들을 하나도 빼앗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은 그 고지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파오악법의 핵심인 국가보안법은 6월 투쟁 이전 상태 그대로 있으며 지난 2년 간의 '민주변혁의 시대'에서 살아 남았다. 지난 시기의 전술적 실패는 총알이 되어 되돌아오고 있다.
15. 적들은 이제 민중운동의 주요 부대들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려고, 일부 부대의 항복을 받아내려고 설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거듭 주장하고 계속 파오악법의 철폐를 요구해야 한다. 또한 계속되는 적의 공격에 저항해서 견결히 투쟁하면서 민중운동의 진지들과 거점들을 지켜내고 역량을 보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내부를 정비하고 다음 공세를 준비해야 한다. 결코 역량과 정세를 고려하지 않고 미친 듯한 전술을 강요하는 소부르주아 급진분자들의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16. 동시에 부분적으로는 공세를 취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합법 민중정당을 조속히 건설해 내야 한다. 지난 시기에, 특히 대선, 총선투쟁 시기에 합법 민중정당을 건설해 내지 못한 것은 큰 실패였다. 적이 '좌익세력 척결'을 내세우고 탄압해 들어오는 데 대해 '좌익세력'을 대표하여 공개적이고 당당하게 자기 입장을 밝히고 저항하는 합법 민중정당이 지체 없이 건설되어야 한다. 이를 선봉대로 하여 적의 공격의 정치적 정당성을 공격해 들어가야 한다.
17. 합법 민중정당은 지금 당장의 투쟁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이 합법성과 완전한 활동의 자유를 적에게 강요할 수 있을 때까지 대중적으로 민중운동의 강령과 정치노선을 선전하고 대중의 역량을 결집시켜 내는 데 있어 합법정당은 엄청난 중요성을 가진다. 정치투쟁의 핵심은 대중을 쟁취하는 데 있으며, 합법성은 대중성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제 민중운동은 합법 민중정당을 앞세워 비현실정치, 운동권정치가 아닌 '현실정치'를 해야 한다.
18. 전민련에 대한 "민중통일전선이다. 고로 전략적 조직이다"라는 식의 관념으로부터 출발하는 견해를 내버려야 한다. 현재의 전민련의 상당 부분은 민중운동의 이전 시대를 대표하고 있으며 구태의연한 사고와 활동방식을 대표하고 있다. 간판뿐인 '조직'들과 민주투사들, 그의 구태의연한 활동방식과 운동적 지위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은 그것의 최대의 부정적인 측면이다. 그러므로 전민련은 이 부정적인 측면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민련의 역사적 임무는 민중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돕는 데 있다. 그러한 역사적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 전민련은 진정한 대중조직의 연합체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19. 다가오는 2~3년간, 남한사회 발전의 중대한 고비가 될 중요한 시기에 그 역사적 임무를 다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은 이 모든 투쟁과 실천에서 이론적 정립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적 실천을 강화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본격적인 사회주의적 실천을 전개하고, 비밀활동을 강화하여 철의 규율을 가진 자신의 전위부대를 형성해 내야 한다. 그에 따라 비로소 노동운동 뿐만 아니라 온 민중운동이 자신의 지도중심을 갖게 될 것이고, 많은 역량을 가지고도 작은 승리조차 거둘 수 없는 오합지졸의 상태를 벗어날 것이다. 전략과 전술에 대한 어떤 논란도 전위부대 없이는 모두 공론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의 건설은 노동운동 뿐만 아니라 민중운동 전체의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이다.
1989. 8. 20. 김명호
◆ 편집후기
5공화국때 4개였던 중앙일간지가 6월 항쟁 이후 7계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지의 목소리도 그만큼 커졌다. <한겨레신문>만 하더라도 한 달에 70편이 넘는 사설을 통해 주의와 주장을 펴고 있다.
우리는 이 신문을 격주로 발행하려 한다. 이것은 현재 우리의 제반 능력 (기사작성, 재정, 보위력) 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이며, 우리에게 그만큼의 '언론의 자유' 만이 현재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은 '자유' 속에서도 모든 금기를 무시하는 완벽한 '자유'를 추구하고자 한다. 좌익 공문구가 아니라면 사물을 정확히 표현하는 그 어떤 용어라도 주저하지 않고 사용하겠다는 태도를 장간호부 더 견지하였다.
제호로 『사회주의자』를 택한 것은 그것이 이 '파란책'의 목적과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 제호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신문의 발간목적에 부응하는 실천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발간목적을 밝히고 있는 『창간사』는 이런 의미에서 제호에 대한 해설이기도 하다.
방금 끝난 영등포 을구 재선거가 주는 교훈을 사설로 다루었다. 이 재선거와 관련하여 조만간 합법 정당 건설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노동자의 분신을 다룬 또한 편의 사설은 이 문제에 관해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우리의 견해를 이제야 용기를 갖고 제출한 것이다. 분신을 비난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우리는 이 사설을 통해 혁명적 노동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절박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혁명적 노동자는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는 분신에 대한 대안이기도 하다. 많은 독자들은 이 실천 강령에 익숙치 않을 것이다. 몹시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을 이겨내지 않고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쟁취한 역사는 없다. 혁명은 이 대열에 앞장서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내부에서 먼저 혁명이 일어날 것을 요구한다.
「선전전의 기치를 높이 들자」는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한 대응전술의 전환을 촉구하기 위해 제출한다. 전환의 필요성과 일반적 과제를 밝히고 있는 이 글은 현 정세 속에서 전술전환의 핵심고리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다른 글로 이어질 것이다.
「승리를 향해 진군하는 전교조 동지들」은 교원노조운동의 성격과 전교조 활동의 전망에 관한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쓰여졌다. 다수의 대중이 강 건너 일어난 불로 안타깝게 보고 있고 이들의 '대중적 지도자'는 내용 없는 선동, 공허한 성명 이외엔 어떠한 정책도 갖고 있지 못한 현실. 노동자계급의 정책수립을 위한 근거로써 이 글을 제출한다.
「민중운동의 당면과제와 진술에 관한 태제」는 정세분석과 진술지침에 대한 폭넓고 긴박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씩여졌다. 그 내용은 가설이며 아직 충분한 연구에 의해 뒷받침 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구체적인 주제들에 대한 연구논문들을 계속 발표할 예정이다. 논의가 진행되면서 틀린 부분은 고쳐질 것이며 가설은 보다 풍부한 뒷받침을 얻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전술'은 기본적으로 가설이며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는 실천에 의해 검증될 뿐이다.
마침내 우리는 『사회주의자』의 돛을 올렸다. 거친 풍랑이 소용돌이치는 바다. 하지만 이 돛을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명령이기 때문이다. 아직 『사회주의자』는 어리다. 그러나 우리는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성숙하게 되어 있으며 조만간 동지들에게 강력한 무기로 다가설 것이다.
1989.8.24.